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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표 Feb 08. 2023

형식을 허무는 박인혜 < 판소리 쑛스토리- 모파상 篇>

‘모파상’ 단편소설로 판소리 갈아입으니 무대가 화려하네…….

‘전통은 고수하고 리듬은 달리한다. 우리 리듬을 실험하는 파격 문화에 관객들은 열광’     


국악(國樂) 리듬이 달라지고 있다. 형식의 파격으로 전통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은 전통과 현대를 개량해 동서양을 질주하고 있다. 괴기한 의상과 메이크업, 젠더 경계를 파격적으로 활보할수록 경기민요를 MZ세대들도 열광하는 힙한 스타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실험은 강렬한 퍼포먼스와 전통과 현대적인 멜로디로 전통의 무게를 허물수록 전통은 강렬해졌다. 소리꾼 이희문은 프로젝트 그룹 민요 록밴드‘씽씽’(2017)이 미국공연 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출연하면서 유튜브 조회 수 800만 뷰에 근접했고 경기민요를 다양한 장르와 리듬으로 콜라보 시키는 파격 실험으로 세계를 열광하게 하고 있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와 엠비규어스의 화려한 무(舞)의 장단과 리듬의 날것으로 재해석 된 역동적인 춤과 소리 리듬도 전통은 살리고 우리의 강렬한 된장 맛을 세계인의 밥상으로 올려놓았다.     

이뿐인가. 소리꾼 이자람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떨림과 울림의 묵직한 창(唱)과 질펀한 아니리로 고전의 텍스트를 선명한 깊은 맛으로 담아내고 있다. 작창(作唱)의 현대적 텍스트들은 연극적인 메타성을 들어내면서도 인물들의 감정과 갈등을 충돌시키며 배경과 풍경이 흐르며 서정과 역동의 극(劇)으로 뒤집는 이자람의 소리 형식도 국악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선정작 <판소리 쑛스토리- 모파상 전 篇>의 박인혜도 전통 판소리를 개량하는 실험을 시도하면서 소리 연희자이자 배우, 연출, 음악감독과 작창(作唱)까지 하고 있다. <필경사 바틀비>,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와 뮤지컬 <아랑가>, 판소리 뮤지컬 <적벽>에서는 조조 역과 드라마 <역적>으로 박인혜의 소리와 리듬에 두터운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번 <판소리 쑛스토리- 모파상 전 篇>은 만석이었고 공연 후 관객 대화도 공연의 형식과 공연텍스트를 소리로 표현해내는 작창 구성 과정과 연출에 관한 질문이 쏟아지면서 박인혜식 판소리에 많은 관객이 관심을 보였다.    

      

전통방식은 고수하고 표현형식을 달리하니 우리 것이 보이는구나. . .     


공연예술창작산실 전통예술 분야 선정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체감하면서도 조기에 매진된 것은 박인혜가 보여준 전작(前作) 공연에 대한 신뢰다. 전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채색하고 형식을 걷어내는 박인혜식 창작방식에 대한 기대감은 커 보였다. 심청가, 수궁가, 홍보가, 적벽가 등 부채를 손에 쥐고 고수의 장단으로 소리꾼의 창(唱)과 사설(辭說)로 아니리 연행을 현대적으로 묶어내는 전통방식에 박인혜는 작창을 통해 1인극의 이야기로 모파상 단편소설<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를 버무리며 상식을 뒤집는다. 창은 판소리와 인물의 대사와 대화, 연기로 표현되고 아니리는 극과 장면의 해설자로 등장한다. 모파상 단편소설의 인물들은 소리 극의 맛도 살리고 극 중 캐릭터로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며 현대적인 재담 극으로도 변주되는 특징도 보인다. 소리와 연기, 장단과 리듬, 아니리와 음악 멜로디 소리는 우리 것이요, 텍스트는 서양의 배경과 인물들을 섞으면서 소리꾼의 모파상 이야기는 입체적인 극으로 무대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 모노드라마와는 다른 1인극으로 선명하게 들어내기 위해 박인혜는 연기적인 표현을 설정하고 있다.      


배우의 연기와 박인혜식 표현의 방식은 그 질감이 다른데, 모노드라마의 극 중 인물로 분하는 배우의 연기는 인물의 상태로 대사, 몸(신체), 움직임과 동작으로 분화되고 발화되는 배우 ‘나’에서 인물의 ‘너’와‘ 나’로 존재가 동화되어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음’으로 보이는 재현의 표현성에 있다면 박인혜는 등장인물의 감정 상태를 움직임의 리듬, 인물의 장면의 분위기와 대회 등을 언어(소리)로 감정의 질감을 살리고 의성어, 의태어의 형태 언어의 질감들이 전달될 수 있도록 판소리에 형식에 현대적인 리듬을 섞이면서도 전통의 결을 벗어나지 않는다. (장고‧ 가야금‧양금, 아쟁‧타악기, 피리‧생황)은 1인 소리 극을 보완하는 등장인물과 연희자의 감정의 감각들로 확장되며 장면의 리듬과 분위기를 극으로 생산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식들이다. 악사연주(김성근, 심미령, 정상화, 오초롱)는 전환되는 장면의 분위기와 등장인물 내면의 변화를 타악기 리듬(자진모리장단, 휘모리장단, 중중모리장단, 굿거리) 장단과 아쟁, 피리, 가야금과 생황의 조화로운 선율로 인물의 언어로 극의 은유로 연주된다. 이런 식이다. 인물의 행동들과 걷고, 바라보며 움직이는 기분과 감정의 질감이 타악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극의 한 장면이다. <보석>에서 인물 랑탱이 아내 보석을 팔아 돈을 세는 장면에서는 힙한 랩 멜로디처럼 ‘찹, 찹, 찹찹, 찹, 찹, 찹찹찹’거리며 악사들의 연주로 돈의 무게와 한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을 표현해내고 <비곗덩어리>에서는 지문으로 묘사되어 있는 소설 속 군중의 침묵과 분위기를 타악의 소리와 리듬으로 표현되는 식이다.     


◆  박인혜의 무대방식     


무대표현 방식은 연극적인 질감과 형태로 배치한다. 전통적인 판소리를 떠올리게 되는 병풍과 부채, 한복을 입은 창자와 고수의 전통적인 리듬을 확장한다. 대표적인 모파상 단편소설 <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 에피소드를 담아내는 무대는 스프링이 달린 노트의 형태를 전면으로 형상화해 배치하고 후면은 찢겨 있는 형태로 세워져 있다. 배우의 등퇴장 동선으로 활용되는 공간이 되면서도 1880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모파상이 이야기는 현재 시공간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상상을 주고 있다. 노트 여백을 살린 공간은 극의 환상을 상상 할 수 있도록 열려있으면서도 담백하고 미니멀하다. 작가 노트는 기록이다. 전쟁, 인간의 위선, 사회 부조리와 모순, 물질만능과 배금주의로 치닫는 사악한 인간 욕망이 들끓고 엘리트와 계급주의는 민주와 평등으로 위장된 현재 시간으로 우리 소리를 입힌 모파상의 이야기는 그만큼 140년의 시공간의 틈을 느낄 수 없는 현재의 시간으로 읽히고 투영된다. 악사와 배우의 의상은 동서양을 융합하는 불특정 국가의 소시민과 군중으로 이미지가 스며들 수 있도록 통일화했고 튀지 않으면서도 소리, 분위기, 타악기, 장면과 공간을 흡수할 수 있었다. 무대 상단 위는 대사와 소리 사설(창과 노래의 가사) 자막으로 투사하며 박인혜가 일인다역으로 쏟아내는 인물들의 대화, 사설의 연행을 듣고,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무대 앞 좌우로는 고수로 보이는 악사와 가야금, 양금, 아쟁, 타악기, 피리, 생황 등을 연주하는 공간으로 배치되어 있다. 악사들의 타악리듬은 다 역의 인물로 분하는 감정의 소리와 장면 분위기로, 인물의 내면의 선율로 움직여진다. 소리와 노래, 대화와 대사, 움직임과 동작이 절제된 연기로 악사들의 연주로만 세 가지 에피소드를 선명하게 공간을 그리고 채워야 하는 박인혜는 입체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감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박인혜는 간단하게 관객과 극의 이야기와 작품 설명을 곁들인 재담을 늘어놓으며 극은 ‘어젯밤 꾼 꿈 같은, 잠시 짧은 밤이지만 하루종일 머릿속을 맴맴 돌고 도는 그런 짧은’ 모파상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 첫 번째가 <보석> 이야기다.      

프랑스 내무성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3,500프랑 연봉을 받으면서도 랑탱과 여인의 결혼 생활을 다룬다. 살림은 알뜰하게 하면서도 극장과 사교장에 다니며 불륜을 숨기고 선물로 모은 보석을 남편 랑탱에게 가짜(모조품) 보석이라고 속인 여인은 폐렴으로 죽고, 랑텡은 가짜 보석을 팔아 생계를 이어갈 생각으로 보석상을 방문한다. 보석이 진짜임을 알게 되며 여인의 보석을 모두 팔아 거금 20만 프랑을 손에 넣고 살아가면서도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랑탱 이야기다. 140년이 흘러도 인간의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의 욕망은 사랑과 인간은 위선으로 타락되어 가는 욕망의 모순을 타격한다. 박인혜는 모파상의 <보석> 랑탱과 여인으로 분하면서 감정을 절제한 다역 인물로 분하고 창과 노래는 서사극 형식으로 인물을 벗어나 상황과 장면 분위기 설명하는 동적인 리듬으로 전환하면서 악사들의 리듬으로 인물의 감정들이 감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장면의 분위기를 확장한다. 특히, 랑탱이 보석상에서 20만 프랑을 손에 쥐고 ‘찹, 찹, 찹찹’ 거리며 돈을 세는 장면은 물질주의에 타락되어 가는 한 인간의 욕망을 감각적인 소리로 표현된다.     


 ◆ 모파상의 세 가지 단편작가의 노트로 기록되는 국가전쟁인간의 모순들...여전히 진행중     


<콧수염>은 1870년대 보불전쟁 이야기다. 주인공 ‘잔’이 친구 ‘뤼시’에게 보내는 서간(書簡) 형식이다. 프랑스 남성 콧수염을 사랑하게 된 전쟁의 기억들로 회상으로 채워지면서도 전쟁의 죽음에서도 프랑스 군인들은 국가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포탄과 탄환이 떨어지는 죽음의 순간에도 콧수염을 달고 전쟁을 지켜내고 국가를 위해 전쟁터를 누빈 이야기는 잔혹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잔의 애절한 내면을 담아내며 “입 위에 슬쩍, 뺨 위에 슬쩍, 털 아래 스리슬쩍” 하며 박인혜는 잔과 소리꾼으로 분하며 서정적인 노래와 판소리 멜로디로 편지를 들려주기도 하고 악사들은 극의 분위기를 절규와 서정적인 내면들의 선율로 극의 분위기를 확장한다. 잔이 편지를 마치며 “오 뤼시, 이런 이야기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마음이 너무 슬퍼져서 더 이상 수다를 떨 수가 없네요. 자, 이제 안녕. 친애하는 나의 위시. 내 마음을 다해 당신에게 입맞춤을 보내요. 콧수염 만세!!” 마지막 장면에서 소리는 현대적인 리듬으로 전화되며 단편 이야기는 선명해지고 박인혜는 소리와 노래 멜로디와 리듬으로 극 중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한다.     


<비곗덩어리>는 프랑스 루앙이 프로아세군에게 점령된 후 전쟁으로 폐허의 도시를 떠나며 마차를 타고 가는 상인, 귀족, 세력가, 퇴역 장교 부부, 수녀와 혁명가,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매춘부의 이야기다. 이들이 뒤섞여 있는 비좁은 마차 안은 전쟁의 혼란에도 국가는 실종되고 이기적인 인간들만 들끓는 세상이다. 포탄이 빛발 치는 죽음의 순간에도 신분은 삶과 죽음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계급이다. <비곗덩어리>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마차가 달려가는 소리들, 인간의 꼬르륵 소리, 탁탁거리는 군홧발 소리, 양배추 스프를 먹는 장면 분위기와 마차가 달려가는 리듬을 악사의 연주와 배우의 소리 리듬으로 인물과 장면의 상황들을 동적인 리듬으로 단어와 음절은 분명한 동적인 소리로 장면의 분위기를 생산적으로 표현하고 선명하게 채워내고 있다. 특히“양배추 스프 냄새가 곳곳에 가득, 땅을 잃은 자들의 노곤이 가득, 어떤 이는 여전히 위엄 있고, 어떤 이는 여전히 우아하며, 어쩐 이는 혁명을 꿈꾸고 거드름 피우는데, 어떤 이는 새까만 방문을 열고, 새까만 문턱을 넘어, 새까만 슬픔을 안고 기엄기업 걸어 나오네”를 표현하는 시적인 장면에서는 소리로 감정의 형태를 표현해내며 휘모니, 중모리 등으로 몰아치는 악사들의 타악기 소리는(연주) 인물들의 감정의 언어로 전달된다. 7장에서 악사 한 명은 <비곗덩어리>의 한 장면 중 달리는 마차에서 열 명의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 먹는 소설의 지문을 들려준다. 마지막 장면이다. 배고파하는 매춘부는 자신의 음식을 사람들이 먹어 치웠던 음식 바구니를 생각하며 프랑스 국가를 달리는 마차에서 슬픈 구음으로 노래한다. 국가를 지켜내는 것은 백작, 수녀, 혁명가도 아니며 이들이 혐오한 하층민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매춘부로 모파상은 상류층 사회의 계급을 비판하고 조롱하고 있다.     


박인혜의 실험의 가능성은 형식을 깨면서도표현형식은 아쉬워.     


박인혜의 <판소리 쑛스토리- 모파상篇)은 전통방식은 고수하고 표현형식을 달리하며 형식을 걷어내는 실험적인 방식에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박인혜식으로 형식을 깨면서도 표현형식에 닫혀 있어 보였다. 아쉬운 점은, 세 개의 에피소드가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1인극의 특성과 제한적인 표현을 생산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에피소드별 표현설정과 전달 방식들이 다양화되었다면 어땠을까. 1인 소리극의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그 이상의 확장되는 표현형식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은 극의 전환과 형태들이 안정적이다. 좁혀 말하면, 박인혜의 재료와 소리, 악사의 타악기로 연주되고 표현 되는 연출의 지점들을 다양한 오브제의 설정과 공간 활용, 장면의 변화, 다역으로 분하는 인물들을 입체화 할 수 있었음에도 확장성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에서는 여전히 박인혜식 실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악사들의 연주로 들려내는 선율과 보여준 앙상블은 박인혜라는 소리꾼이자 배우의 작품을 신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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