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나무
국 수 나 무
신 화 자
오월에는 국수나무도 꽃이 된다. 작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생각나는 키 작은 떨기나무 국수나무는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키 큰 나무 아래나 산비탈 후미진 곳이나 물 빠짐이 좋은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란다. 특별하거나 뛰어 난 특징도 없고 너무 흔하게 널려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오월에 하얀 꽃이 소담스럽게 피었을 때 비로소 국수나무는 화사하게 사람들의 앞에 나타난다. 작고 귀여운 꽃송이는 메밀꽃을 닮았다. 하얀 꽃이 부지런하고 소박함을 연상하게 하는 것은 벌들이 모여들기 때문일까. 작고 하얀 꽃들의 공통점은 순박하고 조촐한 아름다움에 있다.
국수나무는 지방에 따라서 고광나무, 뱁새 더울, 비렁뱅이 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덩굴처럼 줄기가 늘어지고 헝클어지듯 덤불로 자라기 때문인가 보다. 국수나무는 장미목 장미과 낙엽 활엽 관목으로 분류한다. 잎 모양은 국화잎을 닮았다. 꽃은 5-6월에 우윳빛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짙은 노란색으로 변한다. 꽃 모양은 메밀꽃을 닮았다. 아니 아주 작은 국화꽃 송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수국(繡菊)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국화잎 모양을 닮은 이파리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석탄과 석유와 전기, 가스가 일반적인 연료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장작과 숯을 연료로 사용했었다. 1950년대까지도 아궁이에 땔감은 주로 장작이었고 나무를 구워서 만드는 숯은 고급 연료였다. 숯은 지금도 고깃점을 익혀내는 용도로 쓰이지만 석유와 가스연료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전에는 더군다나 유일한 고급 연료였다. 참나무를 구워서 만드는 참숯이 화로나 풍로에서 빨갛게 열기를 담아내던 육칠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숯을 담던 숯 섬을 설명해야겠다. ‘섬’은 벼를 담는 그릇인 ‘볏섬’ 또는 숯을 담는 그릇인 ‘숯 섬’을 이르는 말이다. 숯 섬은 숯을 담는 그릇이었다. 볏섬은 짚으로 만들었으나 숯 섬은 싸리가지를 엮어서 둥근 원통형으로 만든다. 숯 섬 안에는 길쭉하고 퉁퉁한 숯 토막들이 길이로 세워져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양쪽 아래위 마구리는 국수나무 방석으로 마무리했다. 국수나무 가지를 용수철처럼 둥글게 구부리고 편편한 방석 모양을 만들어 숯 섬의 아래위를 막는 것이다. 국수나무의 특징은 쉽게 꺾이지 않고 휘어짐으로 둥글게 말아서 숯 섬 마구리로 안성맞춤이다. 국수나무는 줄기 속에 탄력이 있는 콜크심이 들어 있다. 나뭇가지는 탄력 있고 잘 꺾이지 않는다. 하얀 국수처럼 생긴 콜크심은 이것을 한쪽에서 밀어내면 국수처럼 길게 뽑아져 나온다. 때문에 국수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부드럽고 유연해서 잘 부러지지 않는 국수나무는 곧고 강한 것을 능가하는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젊고 패기 있을 때는 곧고 강직한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삶에 경륜이 더 할수록 부드러움의 가치를 터득한다. 자동차를 타 보자. 경험이 많고 노련한 운전자는 차가 언제 출발을 하는지 멈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차를 움직인다.
부드러움은 성격이나 인품에서도 드러난다. 부드러운 인품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 서예를 익히거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무용과 체육과 그 밖의 모든 예술 분야에서 부드러움과 유연함은 강한 힘과 직선적인 꼿꼿함을 능가한다. 초보자는 기운차고 생동감을 익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럽고 유연함을 함께 익혀야 조화로운 예술작품이 만들어진다. 유연성은 오래 익히고 묵어서 부드러워진 힘이다. 단련되고 숙련된 힘이다. 어렵고 힘든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나서야 생기는 힘이다.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말이 자기의 주장을 강하게 외치는 웅변보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유연성에는 강직함이나 힘찬 기운을 능가하는 부드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국수나무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겸손하다. 두드러지게 잘 난 체 하지 않는다. 누구와 맞서지 않고 누군가 다투며 이기려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휘어질 뿐이다. 큰 나무들은 온몸으로 바람과 맞서야 한다. 작은 나무 국수나무는 바람에 꺾이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다. 부드럽고 유연해서 강한 나무, 작지만 강한 나무, 국수나무를 보면서 옛날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인내심’이라고 꽃말은 누가 잘도 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