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소중함- 병아리
병 아 리
- 생명의 소중함-
매원. 신 화 자
서릿 병아리가 내렸다. 알을 깨고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병아리가 숨을 할딱이며 눈을 떴다가는 다시 감고 잠을 자는 듯 조용하다가, 이내 몸을 움직여 살아 있는 생명임을 느끼게 한다. 어린 생명이 신비롭다.
여름내 어미닭은 알 품기를 소망하였다. 말복이 지나고 처서도 지나서 알둥지에 열 개의 알을 넣어 준 것은 이십 여일 전이었다. 어미닭은 알을 지키고 품어서 병아리를 내렸다. 삼사일 동안에 병아리는 아홉 마리가 되었다. 또 사흘이 지나서 그들이 둥지를 나왔을 때, 알은 여덟 개나 남아 있었다. 이건 계산이 맞지 않는다. 열 개가 알에서 아홉 마리의 병아리가 나왔으니 달걀은 한 개가 남아야 계산이 맞는다. 그러면 일곱 개의 알은 누가 넣어 준 것인가. 그것은 며칠에 한 개씩 쉬엄쉬엄 알을 낳는 또 다른 암탉의 짓이 분명하다. 닭들의 고집은 대단한 것이어서 자기가 알을 낳던 장소를 바꾸지 않는다. 알을 품어 안고 있는 동안에 또 다른 암탉은 알을 낳아서 시차를 두고 보태고 또 보태고……. 그렇게 해서 병아리들이 태어난 후에도 여러 개의 알은 둥지 안에 남아 있었다. 그중의 몇몇은 이미 생명의 싹이 터서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미 닭은 나머지 생명에 대한 애착을 버린 듯 병아리들을 데리고 바깥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여덟 개의 알은 이미 온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여덟 개의 알 중에서 “삐약삐약” 작고 가녀린 생명이 부르짖고 있었다. 그것은 “나 아직 살아 있어요!”라는 다급한 외침이었다. 부리로 이제 막 껍질을 깨트려서 태어남의 움직임을 시작한 한 생명이 알 속에서 외치는 탄생의 외침이었다. 그는 힘들게 껍질을 깨트렸을 것이다. 뾰족한 부리와 코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시고 숨쉬기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탄생을 알린 것이었다. 어린 생명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어미의 체온이다. 인공부화기에서 태어나는 병아리들처럼 온도를 맞춰주면 그는 온전한 한 마리 병아리로 성장할 것이다.
가엾은 생명, 나는 가련한 미숙아의 보육기 노릇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몇 시간 그에게 필요한 만큼 내가 품어 안아서 인큐베이터가 되기로 하였다. 알 껍데기 한쪽에 구멍을 내고 숨을 쉬면서 나는 아직 살아 있노라고 소리치는 생명을 어떻게 모른 척할 수가 있는가. 나의 가슴 한가운데 우묵한 공간에서 그는 한나절을 보냈다. 부드럽고 네모난 화장지 두 겹에 싸여서 살아있는 달걀, 미숙아 병아리는 하루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듯 심심치 않게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삐악! 삐악!” 그는 내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제법 큰 소리로 살아있음을 외쳐댔다. 저녁 무렵이 되자 기지개를 켜는 듯 병아리는 가끔씩 움직이는 느낌이 커졌다. 완전히 어두워진 저녁에 그는 맥주가 담겨있던 골판지 상자 안에서 알 껍데기를 버리고 나왔다. 전구를 켜 주었다. 따뜻하게 되자 젖은 몸이 마르고 뒤척이고 눈을 깜빡이고 무거운 듯 날개를 움직인다. 얼마 후 시간이 지나서 젖은 몸이 완전히 마르고 보스스 한 깃털이 솜처럼 피어나서 아주 귀여운 병아리의 모습을 갖추었다. 추운 듯하면 “삐이약”거려서 불편함을 나타내고 더우면 몸을 길게 늘여서 편안한 자세로 잠이 든다. 그러다가 둘러보아 아무도 없어 외롭다는 걸까. 두리번거리며 삐약삐약 한다. 손을 가까이하면 반가운 듯 안심을 하는 듯 ‘비비 비비’ 즐거운 소리를 낸다. 커다란 나의 손가락을 콕콕 쪼아 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운 생명이 자기표현을 한다. 소리로 몸짓으로 춥다고 외롭다고 배가 고프다고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고 내게 알린다. 손바닥 안에서 살며시 쥐면 아주 작고 귀여운 생명의 부드럽고 따뜻한 체온이 내게 전해온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통해서 교감을 한다.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관심이 떠나지 않는 것, 나는 한 마리 병아리에게서 특별한 애정을 느꼈다. 작은 병아리, 그 역시 내게서 특별한 사랑과 신뢰를 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누구나 어린것, 살아있는 생명체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싹이나 동물의 어린것을 사랑하여 화분에 화초를 가꾸거나 애완동물을 곁에 두어 기르면서 애정을 나누기도 한다. 마음을 나누고 감정을 교환하면서 외로운 마음에 위안을 얻고자 한다. 나의 병아리를 곁에 두어야 할까, 어미에게 보내야 할까. 드디어 사흘째 되던 날 밤에 병아리를 어미닭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어린것을 떠나보내기가 섭섭하기는 하였으나 어미닭의 보살핌이 병아리에게 행복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사람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가족과 이웃과 친구를 대신해서 애완동물을 찾고 있다. 애완동물을 가까이하면서 교감을 하고 따뜻한 정을 느껴서 위안을 삼는다. 외로움과 소외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사랑을 주고받을 상대가, 살아있는 장난감이 필요한 것이리라. 강아지와 고양이, 개구리와 악어. 도마뱀이나 이구아나 같은 동물도 기른다. 심지어는 징그러운 뱀을 기르기도 한다니…….
병아리들은 하루가 달게 날개깃털이 자랐다. 나는 그중에서 제일 작고 어린것을 눈여겨 살펴본다. 그들이 노는 모양을 지켜보며 닭장 앞에서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