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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Nov 14. 2020

"갑질"이 어느 날
내 인생에 찾아왔다.

어느 날 "갑질"이 내 인생에 찾아왔다. 


이전까지 나와는 동떨어진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평화로운 인생은 갑질 때문에 망가지기 시작했다. 


한 프로젝트에서 생긴 일이다. 고객사에서 예산이 유사 프로젝트 대비 1/3 수준인데 기대하는 결과물 수준은 기존에 하던 프로젝트와 동일하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예산이 부족해서 투입 인력도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뿐만 아니라 종료일이 10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신규 항목들을 마구 추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구성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초반에 합의가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를 포함한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모두가 어이없었다. 안된다고 거듭 이야기해도, '프로젝트 결과물이 검수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담당자가 징계 당 할 수 있다.' '당신네 회사 제제당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해서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요청 사항을 반영하는 데 있어 프로젝트와 연관된 합리적인 사유는 없었다. 요청한 항목의 양은 최소 두 달 이상 전 팀원이 모두 달려들어도 제대로 못할 작업 분량이다.


그때부터 밤에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자다가 일어나서 괜히 책상에 앉아서 졸린 눈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주말에도 온종일 머릿속이 프로젝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거 진짜 프로젝트 망하고, 나 회사에서 잘리는 거 아니야?'라는 극단적인 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다 이건 명백히 나의 손해였다. 고객사의 부당한 요청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을 빼앗아 갔고, 건강이 나빠졌으며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렇게 갑질이 들어올 때마다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건 나의 막심한 손해다.

그래서 나는 갑질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갑질이 없을만한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일을 해야하나?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생각해보면 갑질 제로의 인생은 없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갑질은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 인생에서 한번씩 들어올 예정이다. 즉 갑질이 없는 환경을 만드는 건 운의 영역이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사업을 하든 회사를 다니던 아니면 그냥 일상생활을 하든 상관없다. 갑질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갑질을 피하게 하려는 환경을 조성하다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그것 또한 나의 절대적인 내 손해다. 


갑질은 운이 나쁘면 내가 무엇을 하든 일어난다.


물론 갑질이 적게 발생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갑질이 일어나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다. 아니면 갑질을 당하지 않으려고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환경을 바꾸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갑질이 왔을 때 나만의 대응 체계를 만드는 게 더 핵심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우선 한 가지 명백한 건 갑질을 하는 당사자가 나를 직접적으로 해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건 갑질에 대한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는 두려움들 이었다. 이게 나를 잠을 못 자게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에 머릿속의 생각을 점령하여 행복한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만들고, 무엇을 하든 나의 생각을 점령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끊임없이 올라오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상황에 대한 관점을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나는 갑질을 성장의 기회로 해석했다. 사실이 그렇다. 확실히 갑질을 당했을 때의 경험은 지나고 났을 때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줬다. 그래서 나는 갑질을 당할수록 나는 이를 "갑질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갑질 당했을 때의 불안감과 고통은 마치 바이러스가 내 몸에 들어와 항체가 생길 때 열이 나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면역력이 좋아지면, 웬만한 갑질은 내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게 된다고 나는 믿었다. 재미있었던 게 좀 낮은 수준의 갑질이 왔을 때 두려움이 많이 적어지니까 나름 달래기도 하고, 혼내는 투로 이야기도 하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대응이 가능해졌다. 


대부분의 갑질은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일 때가 많다. 내가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다면 무엇이 합리적이고, 정상적인지에 대하여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올바른 대응이 가능하다면 갑질을 당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즉 아래와 같은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갑질에 대한 선순환 프로세스

0. 갑질을 성장의 기회로 해석하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1. 갑질에 대한 면역력이 길러서 두려움과 걱정을 덜한다. 즉 생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최소화한다.

2. 현재 상황을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더 넓은 시야로 현재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3. 자연스럽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더 잘 생각해 낼 수 있다.

4. 상황을 정확하게 보기에 사전에 갑질을 당할 가능성이 더 낮아진다. 


우리가 두려움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갑질의 상황을 정확히 본다면 몇 가지 실질적인 대응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항하느냐 그냥 무시하느냐, 아니면 제3의 방법을 모색하느냐. 예를 들어 나의 경우 갑질 성 지시사항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메일을 보낼 수 있다. 후폭풍은 거셀 수 있지만, 뭐 어떠냐. 한번 제대로 물어줘야 저쪽에서도 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꼬리를 말 수도 있다. 아니면 무시도 굉장히 좋은 방법이다. 미친개는 피하는 게 제일 좋다. 다양한 대응 방법이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나도 바쁜 사람이다. 요즘에는 바로 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는 제3의 방법들이 많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이 세상에서 말이다. 예를 들어 SNS에 증거 상황 등을 올리거나, 아니면 다양한 게시판을 활용하는 등 이슈를 공유하는 방법들이 있다.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 갑질? 이거 정말 천재적인 방법으로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해야 하는 세상이다. 


중요한 건 우리는 이 대응 방법들을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상황을 주도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걸지도 모른다.


이 글이 갑질을 당하는 나를 포함한 당신의 마음을 지켜주는 방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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