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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Dec 10. 2020

무가치한 업무를 하고 있다는 착각

주말 밤샘 근무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남들 다 퇴근했는데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주말에도 계속해서 일을 했다. 

 

'나는 지금 왜 이런 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누가 이런 일을 나에게 시켜 댄 거야. 이런 일 하는 게 너무 싫다.' 


이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생각과 함께 비참한 감정이 올라왔다

도대체 왜 나는… 이게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번 업무는 결과물에 대한 품평회 하길 좋아하는 시어머니가 많은 업무다. 

"이게 전략이야? 이건 전략이 아니지..."

"이 기획이 참 와 닿지 않아요..."

"공감이 안돼요"


내 마음속에 반응은 "?????????!!!", "!!!!??????" 이런 반응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난감했다. 100가지 업무를 진행했다면 거기서 1가지 못하는 지점에 대해서 공격이 들어온다. 99가지 잘한 건 당연해서 그냥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내부 고객, 외부 고객들이 잔뜩 있고, 서로 성향도 다르고 지향점도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을 맞추면 다른 곳에서 공격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내가 일을 하고 결과물이 나와도 별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된다.


나는 별 인정을 못 받게 되니까 이번 일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들이 인정 안 해준다고 일 자체가 무가치하게 되는 걸까? 아니다.


내가 떳떳하면 된다. 나의 생각이 담겨있고, 내가 판단하고 선택해나가는 업무 결과물이다. 그 결과물에 대한 부끄러움 한점 묻어나지 않는 보고서다.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게 핵심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비난을 하든 관계없다. 설사 품평회 하듯 마구 이상한 피드백들이 쏟아져도, 괜찮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된다. 부족한 부분은 당연히 있다. 나라는 ‘사람’이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논리에 허점이 있을 수 있고, 콘텐츠 적으로 내용이 빠져 있을 수 있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즉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이 일이 무가치한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무가치한 일”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일단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나는 급여를 받는다. 거기다 이 고생을 인정받아서 특별 인센티브까지 책정되었다. 그런데 정말 무가치한 일인 걸까? 한 달 동안 어떤 일을 하면 무조건 월급이 보장되어 있다. 연봉 상승이야 누군가 나에 대해서 평가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지만, 적어도 이번 달 월급은 내가 일을 하면 자동적으로 나온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해냄으로서 경제적이라는 가치가 보장된다. 거기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고생스러운 일들은 나를 성장시켜 주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누군가 나에게 시켜서 했고, 내가 선택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나?


그렇지 않다. 원래 나의 프로젝트가 아니었지만,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씩 도와주다가 이렇게 내가 많은 지분을 가져오게 된 것이었다. 즉 내가 스스로 나서서 도움을 주게 선택한 것이었다. 이건 온전히 내가 선택한 일이다. 그리고 모든 업무 순간들이 다 별로인 건 아니다. 하면서 재밌고 보람 있는 지점들도 분명히 있었다. 내가 그런 긍정적인 순간들보다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들만 골라내서 스스로 편집하고 있는 정황도 분명히 있다.


마지막으로 남들보다 좀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 일한다면 내가 어떻게 된다는 걸까?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맞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하는 시간들 일하는데도 아내의 눈치를 엄청 봐야 하는 상황들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매번 밤샘근무 야근 하면서 일하는 건 또 아니다. 심지어 올해에 이렇게 야근과 주말 밤샘 작업을 하는 건 거의 처음이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는 많이 한가하기까지 했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안 했다면 이렇게 글을 썼을 것이다. 어차피 무언가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잠시 글쓰기나 게임 대신에 이렇게 일을 한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 주말에 일하는 게 많다면 이직도 방법이다. 중요한 건 인생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다. 확대 해석할 것도 과소평가할 것도 없다. 일어난 일이고 나는 선택 하면서 대응하면 된다.


결국 나는 무가치한 업무를 하고 있고, 스스로가 비참하다고 든 느낌은 나 스스로 만든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인센티브도 받았고, 나를 뒤돌아 보게 만들었으며, 내가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일이다. 


회사 업무 중에 무가치한 업무는 별로 없다.
내가 무가치하다고 착각하는 업무는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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