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때 일이었다. 상사는 나를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특히 기획에 재능이 전혀 없다고 아래와 같이 말하곤 했다.
"솔직히 너는 기획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거의 없다고 봐. 엑셀은 뭐 중간 이상은 하는데, 파워포인트(PT)를 만드는 거 보면 이건 그냥 재능이 없는 거야. 내가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앞으로 기획 관련 업무는 가능하면 하지 마. 제안서, 보고서, 발표, 강의 이런 종류의 일들 말이야. 알았지?"
상사는 가능하면 기획 업무를 나에게 주지 않고, 다른 직원에게 맡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워낙 일손이 모자라서, 중요도가 낮은 제안서 자료들은 어쩔 수 없이 내가 했다. 그리고 하고 나면 역시 재능이 없어서 잘 못하네라는 말이 상사 입에 붙었다. 그래서 나는 기획 능력 부족,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 이런 말들을 거의 매달 듣고 살았다. 나는 하도 자주 들으니까, 특정 기간 동안 이걸 사실로 믿고 살았다.
그로부터 약 5년이 흘렀다. 신기하게도 내 명함에는 “전략”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회사에서 제안서, 보고서를 1년에도 수십 개씩 작성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제안서의 목적은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투자금이나 각종 지원금을 따내는 데 있다. 입사 한지 그래도 꽤나 많은 자금을 회사로 유입시켰다. 그리고 회사 외에도 발표자료를 자문해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IR(투자 유치를 위한 발표자료) 자료를 컨설팅하고 자문을 제공하는 일이다. 반응이 나쁘지는 않은지 분기에 한 번씩 5-6개 정도 스타트업에게 멘토링을 제공하는 역할이 본업과는 별개로 들어오고 있다.
매달 재능이 없어, 형편없어라는 소리만 듣고 살아서 그런가 나는 정말 재능이 없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나의 인생에서 나오고 있었다. 글도 마찬가치다. 주변에서 재미없다. 논리가 안 맞는다라고 악평을 받았던, 스타트업 이직에 대한 내 브런치 글이 지금 퍼블리에 게재되었다. 만약 내가 이걸 진짜 별로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 했으면 저 퍼블리에 내 글이 올라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안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지원했었다.
물론 내가 엄청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능이 아예 없다고도 생각되지는 않는다. 단지 재능이 없다는 평가는 나에 대한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잘못된 표현일 뿐이다. 재능이 0이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브런치에 글 80개도 올라와서는 안된다. 그런데 글을 이렇게 썼다. 그건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즉 사회초년생 때 나를 향한 평가는 잘못되었다. 이게 예시를 하나만 들긴 했지만, 사실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많다. 나를 향한 부정적인 평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많이 틀렸다. 또 긍정적인 평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생각보다 내가 재능이 없던 일이었다. 그렇게 나에 대한 평가는 매번 엇갈렸다. 나는 내가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내가 선택해야 한다. 즉 나에 대한 평가에 있어, 최종 평가 위원장은 나일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위에 상사가 나의 기획 업무에 대한 평가는 잘못되었다.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이 상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까? 이 상사의 의지와 관계없이, 책임을 질 수 없다. 상사 외에도 그 누구도 나에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설사 내가 상사에 대한 악감정으로 전화를 걸어서, 그 평가에 대한 비난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전혀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최종 평가는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이 내 인생 통틀어 나에게 영향력이 계속해서 미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기획에 재능이 전혀 없다고 굳게 믿고, 기획과 관련된 업무를 피하려고만 하고 살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기획 업무를 했는데 진짜 내가 재능이 없는 것이다. 다 내가 책임지는 구조다. 이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진다. 이 말을 한 사람들이 지는 게 아니다. 책임임을 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그래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한다. 평가에 대해서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별로야”이런 자괴감에 스스로를 비난하라는 말은 아니다. 또는 스스로를 남과 비교해서 정말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우월감을 갖자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평가해서 똑바로 알아보자는 의미에 가깝다. 물론 내 인생을 결정하는 평가를 이 부족한 내가 어떻게 결정하는가?로 고민할 수 있다. 평가를 스스로 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의견을 듣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전문가들 의견 최대한 듣고 이를 토대로 내가 결정하자는 의미이다.
결정은 결국 나의 인생 숙제다. 어쩌겠는가... 인생을 걸고 책임지는 사람이 결정해야지. 한 가지 다행인 건 평가도 계속해서 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평가할 때 다양한 관점을 듣고, 이해하고, 이러다 보면 더 좋은 평가를 스스로 하게 된다. 많이 평가하고, 많이 실패해도 이게 또 성장으로 이어진다. 왜 야하면 스스로가 주도해서 선택을 내렸기 때문이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성숙한다. 그러니 책임을 피할 구멍이 없다면, 스스로가 계속해서 더 많은 자신에 대한 평가들을 계속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