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 시작하고 나서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동료, 상사, 부하직원에 대한 평가표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내 상사 일은 잘하는데, 리더십은 별로 내.
저 사람은 참 게으르네…
저 친구 참 일을 왜 이것밖에 못하는 걸까?
와 커뮤니케이션 정말 엉망으로 하는구먼…
일을 참 잘하는 리더네…
이런 평가들 말이다.
보통 누군가와 일을 같이 하자마자 평가들이 떠올랐다. 평가 결과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 그 평가 결과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어서, 잘 바뀌지 않았다. 상대방이 평가 결과와 상반된 행동을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나에게 보여주어야만 비로소 평가는 업데이트되었다. 문제는 내가 초반에 평가를 잘못하면 계속 그 잘못된 평가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지난 7년 동안 직장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정말 끊임없이 평가했다. 그런데 사람들과 오랫동안 일하고 알고 지낼수록 내가 처음에 했던 평가가 정말 많이 틀렸다. 그래서 평가 결과를 수정했지만, 그조차 또 틀렸다.
예를 들어 나는 직장 동료 A를 "게으르다"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자주 지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으르다고 인식하고 보니 A가 업무 데드라인 내 업무를 완수하지 못할 때마다 게을러서 그러는 거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나의 생각과는 정 반대였다. 일단 지각은 A의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것을 매번 설득하기 위한 실랑이를 벌여서 매일 늦었다.
30분 넘게 지각할 때는 아이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다가 출근해야 해서 늦었다. 오히려 A는 게으른 게 아니라 성실하게 아이를 잘 훈육하고, 키우는 분이었다. 그리고 업무 기한이 어긴 적이 있었던 것은 나의 착각들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기한 내에 수행했고, 분기에 한번씩 중요한 일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기한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 정도였다.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하니까 가끔 있는 기한을 넘긴 업무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즉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이런 식으로 내 마음속 평가는 자주 오류가 발생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직장 동료들에 대해서 정말 1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일단 동료들은 아무리 직장에 오래 있지만, 직장 생활 외의 시간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이 사람과 가까이 일한다고 해서, 정작 집 등에서는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즉 그 사람의 인생의 반절 부분만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하려면, 정말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절대 그렇게 쉽게 바로 평가할 수 없다. 우리가 면접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가 어렵고,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의 직원들을 보는 것은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는 건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건 그날그날의 환경 등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행동을 하곤 한다. 즉 직장인 A의 오늘은 어제의 A와는 다른 모습일 것이고, 내일도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이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너무나도 많은데, 나를 포함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람을 평가하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어 버린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했다. 정말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해서 저 사람은 "게으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이다. 나는 묻고 싶다. 그 사람의 인생 모든 행동이 다 게으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도 게으르게 행동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은 게으름과 부지런함 사이에 스펙트럼 속에서 그때그때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가령 맨날 늦잠 자서 회사에 늦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정말 부지런할 수 있다. 집에서 글 쓰는 걸 좋아해서 1일 1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할 수 도 있다. 매일 글 쓰는 작가한테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회사에서는 업무 기한을 자주 넘기곤 하지만, 집에서는 매분 매초 아이를 적극 정성 돌보는 가장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가장 보고 게으르다는 한마디로 평가할 수 있을까? 수십 년의 인생을 단 한 단어로 평가하는 것을 말이다. 쉽지 않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 사람의 행동에 기반한 평가를 표현하는 방식도 쉽지 않다. 가령 게으름과 부지런함 사이에 수많은 점들이 있다. 그리고 동료들은 이 사이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객과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건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언어 자체가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설사 1-10점까지 점수를 매긴다고 이 결과가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사람마다 느끼는 척도가 다르기 때문에 평가는 주관적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평가하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았으면 한다. 지각을 했으면 지각을 한 것이다. 이유를 모른다면 모르는 것이다. 거기에 바로 게으르다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는 체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자. 이 사람을 완전히 파악하는 건 거의 어렵다고 말이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한 면이 있는데 , 남을 평가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람 정말 쉽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자. 어설프게 평가해서 그게 고정관념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더 제대로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게 될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함부로 사람 평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