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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소영 Aug 25. 2021

디자인 지식과 디자인 실력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많이 다르죠?

예전에 "디자이너" 직책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하던 중 살짝 놀란 일이 있었어요. 인테리어쪽에 계신 분이신데 대화중 제가 한 쪽을 가리키며 "여긴 폰트를 산셰리프 서체로 하는게 통일성이 있을 것 같고, 벽에 붙인 포스터는 김환기 같은 단색화로 가는게 어떨까해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속으로 생각했죠. “아니 세상에 이걸 모른다고?”

저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산셰리프와 셰리프의 차이를 알고, Helvetica 와 Futura 정도는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을 했고, 김환기와 이우환의 그림 정도는 알고 좀 더 관심이 있다면 단색화 작가들의 계보 정도는 꿰고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편견이라는 것을 나중에, 아주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패션쪽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남성복 바이어가 Self Portrait 브랜드 모를 수 있고, 여성복 바이어가 Baracuta 모를 수 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Le Corbusier를 모를 수 있고, 건축가가 Jonathan Ive 모를 수 있죠. 이걸 안다고 해서 일을 잘 하거나, 모른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저 같은 부류들이 있습니다. 뭔가 하나를 파면 끝을 봐야하고 남들보다 좀 더 아는게 실력이라고 믿고, 많이 외우면 더 있어보인다고 생각하는 한심한 치들. 그런데 더 다양한 지식을 남보다 더 많이 외우는 것은 그저 자기만족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진정한 프로는 그냥 결과물로 말하는 법이죠. 학자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고. 뭘 더 많이 외고, 안다고 떠들어봐야 사람 실없어보이기 밖에 더 하나요? 그래서 어디가서 이제 알아도 모르는 척, 느껴도 못 느끼는 척 합니다. 결과물로 말하는게 진정한 프로들의 세계라고 생각하거든요.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그냥 자신의 색깔, 그리고 느낌을 깊이있게 발전시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완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건축 디자이너에게 타이포그라피를 물어보거나, 한국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이없는 대화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가령, 정말 아모레퍼시픽을 만든 David Chipperfield 건축가에게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미감을 물어보면 뭔가 대단한 답변이 나올까요? 쇼팽 전문가 조성진 피아니스트에게 달항아리에 대한 감상평을 들어보면 뭐라 이야기할까요?

여튼간 이러한 디자인의 영역은 더 알고, 더 외우고의 실력보다는 자신의 느낌을 얼마나 완성도 있고 깊이있게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학자의 길을 갈 것이 아니라면 타이포그라피의 역사를 훑거나 바우하우스의 계보를 외우는 것은 그냥 별볼일 없는 유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디자인의 기본지식? 그른거 읍다.  는게 제 결론이에요.


​​그때 그 디자이너님에게 살짝 죄송한 마음에 끄적여보았습니다. 아임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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