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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Aug 28. 2020

집사는 더 강해질 거야

진단부터 현재까지의 스토리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전날까지 평소처럼 잘 먹고 잘 놀던 아이.

생전 그 흔한 헤어볼도 토해본 적 없는 아이가 이달 초에 갑자기 노란 토를 했다.

하루 정도는 지켜봐도 괜찮겠지 싶어 그냥 뒀다.

다음 날 오전에 아이는 공복에 또다시 노란 토를 했고

순간 이건 뭐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각종 검사 끝에 나온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혈검 결과상 신부전 수치가 최악을 찍었단다.

이게 끝이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초음파상으로 한쪽 신장에 물까지 찬 수신증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요관이 막혀서 신장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반대쪽 신장이 홀로 일하다 과부하가 걸린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근데 남은 한쪽 신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면 수치가 그렇게 높게 나올 수 없단다.

즉, 남은 한쪽 신장마저 이미 기능이 많이 떨어졌을 거란다.

나이로 봐선 만성일 확률이 낮지만 진행된 지는 오래됐거나 선천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급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

쏟아지는 낯선 용어와 믿을 수 없는 말들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순간 이게 다 꿈이 아닐까 싶었다.


수치로만 보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지만 은비는 전혀 아파 보이는 기색이 없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만 뚝뚝 흘리다 말문이 막힌 나를 위로하며 수의사가 말했다.


 "고양이들이 원래 아픈 걸 잘 숨겨요. 그래서 거의 말기 때나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이 정도 수치면 기력이 없어 축 늘어져 있거나 누워있는 게 보통인데...  겉으로 보이는 아이 상태만 봐선 모르셨을 것도 같아요."


고양이들이 아파도 티를 안 낸다는 말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 자체도 고통스러웠지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전혀 몰랐던 무지하고 둔한 집사였다는 사실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고작 4살밖에 안 됐다.

그간 어디 아픈 기색 하나 없었고 그 흔한 구토나 설사 한 번 없었던 아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자고

그 정도면 아직 4살짜리 고양이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했다.

가뜩이나 병원 가기 싫어하는 아이 스트레스 주기 싫어서

종합검진은 좀 천천히 해줘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신부전 소식을 들은 그날,

지난 일을 후회하고 가슴 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은비를 진료한 수의사는 당장 입원시켜서 수액으로 수치부터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막힌 요관 때문에 물이 차기 시작한 신장은 인공 요관 우회술이라는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수술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수 있으니 가족들과 상의하여 오늘 내에 결정해달라고 했지만,

당장 아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힘든 결정을 어떻게 단시간에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모든 걸 갑자기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버거웠던 난 일단 아이를 입원시키고 돌아왔다.

수의사가 은비에게 권했던 그 수술은 국내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은 데다

생각보다 위험하고 아주 어려운 수술이라 예후를 장담하기 힘든 수술이었다.

더구나 회복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고, 수술하고 끝이 아니라 인공으로 관을 연결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세척도 해줘야 했다.

수술한 아이들의 사례를 여럿 봤는데 재수술한 경우도 많았고, 수술 후 2, 3년이 지나서까지 잘 유지하며 지내고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수술을 하다가 또는 수술받은 다음 날 바로 별이 된 경우도 있었고, 회복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별이 되거나 수술을 했음에도 수치가 계속 올라 결국 한 달 정도 버티다 별이 된 아이가 있는 등 천차만별이었다.

그만큼 리스크가 커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기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울기만 했다.
물론 고양이 수술 중에 두 번째로 비싸다고 할 만큼 비용도 만만찮았다.

만약 수의사가 이 수술을 통해 한쪽 신장을 살릴 수 있고, 관리만 잘하면 아이가 주어진 수명까지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했더라면 -

나는 얼마가 들든 수술을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의사들은 언제나 최악을 말한다는 걸.

분명 위험한 수술이고, 최악의 경우 수술하다 죽을 수도 있으며

수술한 신장을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해봐야 알 수 있고, 우회술로 요관을 뚫어줘도 그 신장이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라면 그냥 적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고 수술을  하고 그대로 두면 수신증 상태의 신장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염증이 생겨 농신증이  수도 있고, 폭탄처럼 그대로 '!'하고 터져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적출을 해야 하는데, 남은 한쪽 신장마저 기능이 온전치 않으니 그나마 수신증 상태의 신장을 살려보려면 우회술을 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해도 결국 아이를 잃을 각오는 해야 했으니

내 인생 최대의 고비다 싶을 만큼 어려운 고민이었다.


숨만 쉬어도 눈물이 흐를 만큼 깨어있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운 이틀이었다.

나는 과거에 키우던 14살 노견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욕심에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마지막을 허망하게 보냈던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다음에 또 동물을 키우거든 그땐 절대로 병원에서 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터라 은비마저 또 병원에서 잃을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웠다.

그렇게 가족들과 오랜 고심 끝에 결국 수술은 안하기로 했다.

대신 입원을 통해 최대한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처치는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는 입원을 하고 하루는 집에서 피하 수액을 맞혔다.


좀 나아졌길 바랐지만, 이틀 후 다시 한 혈검 결과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하루 입원으로는 수치가 드라마틱하게 떨어지지도 않았고,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 다음날 집에서 피하 수액을 맞혔더니 오히려 수치가 더 올라갔다.

결국 다시 입원을 시키기로 하고 이틀을 더 지켜봤다.

입원하고 식욕이 없어서 통 뭘 먹지 못한 은비가 걱정돼서 아침저녁으로 강급이라도 하러 계속 병원을 들락거렸다.

'비록 널 병원에 두고 있지만 집사는 항상 니 옆에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그러니 제발 먹고 얼른 집으로 가자고'

면회를 갈 때마다 꼭 안고 말해줬다.

입원한 상태에서도 은비는 식욕만 없었을 뿐, 기력은 평소와 같아 보였다.

병원에서 보내준 입원 당시 은비 모습

그리고 이튿날.

혈검 결과는 놀라웠다.

150->39.5 / 15->3.14

측정 불가였던 신장 수치가 놀라울 정도의 큰 폭으로 떨어져 있었다.

하루 정도 수액을 더 맞으면 정상 수치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은비의 빈자리로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집에서 하루만 더 자면 아이를 데려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그날은 나도 잠을 좀 잤던 것 같다.


하루가 더 지나고 은비는 드디어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그렇게 측정 불가였던 수치에서 3일 만에 정상까지 떨어졌다는 건 거의 기적과도 같다며 수의사도 놀라워했다.

바로 퇴원 수속을 밟고 이제 통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매일 놓는 피하 수액과 보조제 2개를 처방받았다.

일단 너무 수치가 높았으니 당분간은 간격을 짧게 두고 재검하기로 했다.

퇴원하고 이틀 후에 재검,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2주 후, 이런 식으로 결과에 따라 서서히 텀을 늘려가기로 했다.


이틀 후 재검했을 땐 수치가 더 떨어져 완전 정상 범위 내에 있었고,

지난주에 재검했을 때도 수치는 정상 범위였다.

게다가 그날 수신증이 있던 신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도 다시 봤는데 놀랍게도 물이 좀 빠졌다고 했다.

초반에 13.5mm 정도로 물이 차 있던 것이 지금은 5mm가량으로 줄었단다.

요관을 막고 있던 것이 좀 뚫려서 물이 빠진 모양이라며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무엇보다 수술은 면했다는 말이 얼마나 기뻤는지.

평생 케어해줘야 하는 병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다 나았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수술은 안 시키기로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그 수술을 집도한 경험이 많다는 유명 외과의의 소견도 듣고 싶어 한 달 뒤에나 가능한 예약도 겨우 잡아둔 상태였다.


다음 주에 또 재검을 앞두고 있다.

병원 가기 전에는 늘 떨리는 마음이다.


우리 은비.

하루아침에 환묘가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내 고양이이자, 내 딸이자, 내 친구이자, 내 가족.

오늘도 기도한다.

옆에 누운 아이 배를 쓰다듬으면서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준다.

남아 있는 물도 다 빠질 거라고,

집사가 더 강해져서 평생 잘 케어해줄 테니 넌 그저 장수하기만 하면 된다고.

제발 오래오래 집사 곁에 있어 달라고.

매일 수액 맞히고 약 먹이는 집사를 바라보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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