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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Jul 27. 2020

남양주 라이프

도시 요리사의 교외 정착기

삼각지에서 남양주로 사는 곳을 옮겼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이제껏 도시에서 살았던 제가 어설픈 교외 생활을 시작했지요.

아주 시골은 아니지만, 아파트 사이에 대파가 듬성듬성 자라는 낯선 풍경.

아침엔 늘 먹던 커피에 토스트가 아니라 엄마가 지은 콩밥에 꽈리 고추 무침을 먹습니다.

마트가 아니라 텃밭으로 장을 보러 갑니다.

매일이 새롭고 다릅니다.

저는 여기서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정혜 언니의 그림과 함께 일상을 기록해나가려고 합니다.  



#1

성실함에 대하여


 남양주로 이사오고 나서 부쩍 일어나기가 힘들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아직 못다한 집정리로 늦게 잠을 청하는 날이 많다. 그날도 너무 일어나기 싫어서 버둥대다가 겨우 일어났다. 머리도 안감고 아침은 당연히 안먹고 반쯤 잠든 상태로 빌라를 나선다.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아빠다. 아빠는 찻길에서  대걸래로 뭔가를 열심히 닦고 있다. 웬 대걸래를 밖에까지 가지고 나와서? 가까이 보니 밤새 사람들이 술먹고 토해놓은 것을 닦고 계신다. 아 저렇게까지, 눈물이 날랑말랑. 

 아빠는 전날 당구를 치다(?) 12시에 들어와도 매일 새벽 청소는 빼먹는 일이 없다. 아빠가 깨끗이 닦아놓은 길모퉁이에서 청소년들은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식당 아주머니는 누군가에게 한풀이 전화를 길게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가능한 데에는 늘 누군가의 수고가 있기 마련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의 요리에도 그런 성실함을 싣고 싶다. 유행이나 얕은 아이디어에 기댄 것이 아닌 진짜 성실한 요리. 재료부터 성실하게 고르고, 더 성실하게는 기르면 좋고, 조리 과정도 꼼꼼하고, 여러번 반복해서 가장 맛있고 영양있는 레시피로 완성된 요리.

 마음은 이런데 또 나는 그날밤도 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본다. 그리고 또 피곤하고 멍한 채로 일어난다. 흐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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