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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Dec 22. 2020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 적 있는가

101일간의 여정 7주차

각기 다른 분야의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2주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도 하고 있답니다. 101개의 답변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마라톤을 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임해보겠습니다.


31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 적 있는가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 외딴 시골에서 홀로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현대의 인간이 자유롭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주 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가능할 일일 것이다. 고로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 적이 없다. 


완전무결한 자유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진리에 통달한 듯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편의를 위해 ㅅ이라고 지칭하겠다. 그는 다른 의원실 비서관이었다. 경남고-서울대 라인의 엘리트 출신임에도 그의 삶의 궤적은 여느 엘리트들과는 사뭇 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직장들을 다 거절하고 그는 절에 들어갔다. 이름을 대면 대부분이 아는 큰 스님 아래에서 수양을 하며, 개도국에 학교나 집을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20대 후반에 절에 들어간 그는 3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속세로 나왔다. 


국회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건 몰아치는 일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늘 내가 열내는 모습을 보고선 ㅅ은 아주 담담히 '화내면 니만 손해다. 그냥 아휴, 불쌍한 중생아. 니는 평생 그렇게 살아라. 이래 생각하고 잊어라'하고 말했다. 어차피 그 사람들과 평생 얼굴 맞대고 살 것도 아닌데,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부처와 같은 조언. 그러면 나는 '선배는 그게 돼요?'하고 반문했다. 그는 웃으며 자신도 사람인지라 매번은 아니지만 금방 평온을 찾는다고 답했다. 가슴에 불이 활활 타오르던 2018년 나는 그에게 정말로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남의 시선, 물질로부터 자유로웠던 사람.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실제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로 떠났다. ㅅ을 볼 때면 언제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속에는 들끓는 열정이 있으면서도 모든 것에 초연해 보이던 ㅅ.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마 또 어디론가 날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말이다. 두 사람이 같이 걸어가는 삶 속에서 그는 어떻게 자유를 좇고 있을지 궁금하다.


32 가끔 멈춰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는가


나의 하루를 찬찬히 돌아본다. 노래를 들으며 빠른 걸음을 걷는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무, 달, 그리고 고양이. 걸음을 재촉해 늘 바삐 어디론가 향하는 현대인의 삶. 가끔 멈춰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것들이 없는 것이 문제일까. 도시의 풍경은 어딜 가나 비슷하고 그다지 오랜 시간을 들이고 싶은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달은 걸음을 가장 자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수호성이 달이라 그런지, moonchild를 상기하며 목이 아플 때까지 달을 보곤 한다. 달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기란 힘들다. 너무나 멀리 있는 당신. 자세히는 아니지만 오래 들여다볼 순 있다. 


일상 속이 아니라면 나는 바다를 꼽을 것이다.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저 멀리서 내게 가까워지는 파도와 철썩거리며 사라지는 물거품. 그리고 수평선 너머에서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태양과 달과 함께하는 시간. 


얼마 전 강릉 송정해변을 걷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빨갛게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기 위해서.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보니 그 원은 태양이 아니라 달이었다. 검푸른 바다의 경계에 머물러있던 달은 마치 태양처럼 다시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아마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나는 그 빨간 원을 태양이라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는 해가 내 신세 같다고 처량해했던 날, 나는 다시금 바다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요즘은 잠깐은 아니지만(인생 전체로 본다면 잠깐의 시간일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는 내가 받은 사랑과 행운을 충분하게 감사해왔는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맹목적으로 달려온 시간이 오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난 후, 나는 종종 멈춰 서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자기 성찰 속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33 발아래를 보며 살고 있는가


나의 시선은 좀처럼 아래를 향하지 않는다. 밤이고 낮이고 하늘을 보고 걷는 편이다. 사회적으로도 위로만 올라가길 바란다. 이 질문을 접하고 나서 한참 뒤 작성하는 답변이지만 그저께 여의도역에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래를 보며 걸어보았다. 깨끗한 거리, 잘 놓여진 화분들. 까치들도 만났다. 까치 울음소리가 매우 귀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발에 밟히는 것 없는 반듯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시간 동안 그곳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분들의 노고가 담겨있다는 뜻일 테다. 


말 그대로 발아래는 아니지만 하루를 큰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노고들이 아주 사소한데에서부터 모였을 것이다. 비단 거리뿐만 아니라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일터와 화장실 같은 곳의 아래를 살펴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발아래를 보며 산다기보다는 좀 더 나를 둘러싼 모든 방향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삶의 경로도 마찬가지다. 뒤도 가끔씩은 돌아보고, 이 아래는 무엇이 있을지도 미리 대비해보는 것이다. 인생의 싱크홀 같은 것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좋은 일만 생각하려고 하는, 혹은 장밋빛 앞날을 공상하는 나에게는 꽤나 힘든 돌아봄 일지 모르겠다.


34 나의 앎과 믿음은 하나인가


감이 잘 오지 않아 검색하니 종교에 대한 글이 대다수다. '믿음과 앎'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발견했다.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일화는 믿음과 앎 사이의 갈등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가? 내 대답은 예스다. 그러나 외계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아직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으니 나는 확실히 안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믿는 것들의 대부분은 앎과 연동되지 않는다. 믿음은 주관적이니까.  


믿음에 꼭 앎이 함께 해야 할까. 내가 무엇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이유는 내가 잘 그 분야를 잘 알아서라기 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믿음을 앎으로까지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꽤 즐겁다.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일을 실제로 잘 해낼 때, 나는 이런 부분에 강점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도 나는 앎과 믿음이 하나가 아닌 것이 좋다. 알지 못하지만 믿음을 갖고 알아가는 것, 앎을 만들어나가는 게 즐거우니까. 


35 같이 걸을 동행이 있는가


동행이라는 말은 참 따뜻한 단어다. 유인태 의원님과 일할 때가 기억난다. 의정보고서나 후원회장에는 꼭 동행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이 떠오른다.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나는 무얼 하든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판을 벌리고 주변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이 함께할 때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같은 경험을 했는데 다른 해석이나 감상들이 나오는 걸 목격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세상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고 내가 몰랐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마음으로. 


101 모임도 나에게는 일종의 동행이다. 홀로 질문의 답을 써내려 갔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 홀로일 때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행위에 임하고 있다.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삶과 생각을 엿보며 나의 생각도 확장하고 있다. 함께하는 것의 힘이다.


하고 싶은 것들이 워낙 많지만 능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나는 친구들에게 늘 무언가를 함께 하자고 조르는 편이다. 러프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없는 경우에는 그 능력을 가진 친구와 무언가를 도모한다. 정치 집단에 있다 보니 더더욱 팀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되었다. 어떠한 역경이 와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서 나오니까. 


언젠가 내 팀을 꼭 꾸리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산다. 함께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무언가를 이뤄내고 그 경험을 같이 곱씹을 수 있는. 함께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다른 길로 떠나도 괜찮다. 하나하나 같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내 삶에 계속해서 찾아와 주기를. 그들을 만나러 나서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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