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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출 Nov 14. 2019

대신 쓰는 엄마의 자서전

죽음에 관하여

나의 사랑이 죽었다.


어떤 기분일까.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러나 우리 엄마에겐 현실이었다.


엄마 나이 고작 40대 초반.

10살 배기 아들과 15살 딸과 함께

엄마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 머릿 속엔 그 시절의 기억이 많지는 않다.


처음엔 감기가 오래 가는 듯했다.

그러나 아빠는 점점 야위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때, 심각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나와 산에 오르던 아빠인데, 철봉을 그렇게나 잘하는

근육질의 우리 아빠인데, 아빠가 아프다고?

곧 낫겠지!


엄마가 아빠의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다.

아빠가 어느날 병원에 입원했다.

난 새학기가 시작해, 새 친구들을 사귀느라 정신이 없었다. 놀다가 아빠를 보려 병원에 갔을 때, 아빠는 내게 화를 냈다. 아빠가 아픈데 이렇게 늦게 오냐고.


난 아빠가 좀 예민한가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겨울,

삼촌이 나를 어느 역 근처로 불렀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생각보다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냥 ... 어느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아 이제 아빠와 나의 시간이 끝났다는 느낌에

허탈하고 그냥 ... 눈물이 났다. 거리에서 우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패딩으로 눈물을 닦았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볼까봐.

쟤 운다고 할까봐.


장례식장에서도 마음껏 울지 못했다.

이제 나는 아빠가 없어서,

그래서 슬퍼하는 게 왠지 부끄러웠다.

대체 나는 뭐가 그렇게 부끄럽고 남의 시선이 신경쓰였을까.

고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내내 태연한 척,

흰 소복을 입고도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만지던 나는,

좋아하는 교회 선생님 한분 앞에서만 펑펑 울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그 집을 떠나,

우리 가족은 다른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집은 훨씬 밝고 넓었다.

처음 사는 아파트라 기분이 좋았다.


그치만 그 여름.

해가 높이 뜬 낮에도, 처음으로 침대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주황빛이 일렁이는 커튼. 그림자처럼 까맣던 엄마의 등.


나는 차마 엄마를 본체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슬퍼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당시 내 기억에

젊고 아름다운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치만 사춘기의 나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느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엄마같은 엄마가 안 될 거라고" 큰 소리를 쳤다.


엄마가 아빠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 같아서

밉고, 야속했다.


20대 후반이 되어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긴 나는 엄마에게 참 미안하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자, 참 아름다운 여자였을 텐데.


나는 나 같은 딸을 낳을까봐 애 낳기가 무섭다.

지만 생각하고, 성질도 더럽고, 이해심도 없는 딸.


늦었지만 이제는 우리 엄마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따뜻한 사랑을 주고,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나를 키우는 엄마에게도

그런 사람이 필요했을텐데.


딸은

항상 엄마보다 느려서

미안하고 슬프다.


앞으로 얼마나 더 미안하고 슬퍼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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