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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고있는땅콩 Feb 22. 2021

내가 당신과 떠나고 싶은 여행

 내가 당신과 떠나고 싶은 여행.


 휴대폰은 애초에 챙기지 않기. '서로와 여정'에만 집중을 하기 위해서 말이야. 함께 세상과 사람을 둘러보기 위해 떠나지만 오히려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격리되어 보는 거야, 함께. 맛집이나 명소를 미리 찾아볼 필요도 없어. 오로지 우리가 살아온 기억이나 감각만으로, 그러니까 우리의 나이테에 묻어있는 경험들만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거야.


조금 맛이 없거나 멋이 없어도 괜찮아


 장소는 여수와 남해쯤을 생각했어. 옛날 노랫말처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거야. 함께 경계를 넘는 일에 괜스런 의미를 두고 싶거든. 여수에선 사람들이 북적이는 번화가로, 남해에선 인적 드문 시골길을 둘러보기로 해. 하루는 사람들 사이에 섞인 자리에서, 하루는 사람들에게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싶어. 그렇게 경계를 넘으며 우린 어떤 감정의 파도를 맞을지, 우리의 향은 어떻게 변할지, 바다 소리나 노을 색의 차이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숙소는 꼭 싱글베드 두 개가 마련된 곳이면 좋겠어. 적당한 그리움의 거리를 남겨두고 콩닥대는 가슴으로 밤을 보내는 거야. 첫 키스 직전의 바짝 긴장한 설렘 같은 것이 피어나기를, 말랑하고 달큼했던 그때의 감각들이 살아나기를 바라.

 여행에 앞서 서로에게 선물 하나쯤은 미리 준비하기. 이 여행으로 우리는 서로를 더 절박하게 사랑하거나 더 간절히 밀어내게 될 테지만, 서로에게 건네는 선물로써 적어도 기억될만한 무언가는 남기고 싶거든. 훗날 기억이 왜곡되지 않게 물건으로 시절을 새겨두는 거야. 짧은 손 편지 정도를 더해서 말이야.

 

변해버릴지 모를 기억 말고 서로의 지문이 묻은 흔적으로 당신을 기억하고 싶어


 한 끼 정도의 식사는 서로에게 요리를 해 줘 보도록 하자.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도 좋고,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야심작을 선보여도 좋아. 그렇게 각자의 삶을 서로에게 먹여주는 거야. 그 식사를 가지고 아주 늦은 새벽, 그러니까 밤 깊은 세 시 정도까지는 술 한 잔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싶어. 아주아주 고요한 시간까지 둘만으로 잠기고, 한 차원 더 상대에게 밀려들어가는 것. 그러다 한 번쯤은 입술끼리 교통사고가 나도 좋겠어.



 어쩌면 이 여행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 한 번쯤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3일 혹은 3년 혹은 30년이 될지 모르는 여행을.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은 여행을.




[사진 : 자다르, 크로아티아 / 전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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