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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고있는땅콩 Apr 01. 2021

봄밤의  편지

사랑한다는 말은 봄을 닮았더라


봄밤이 왔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하얀 밤이지만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그런 밤.


해가 거듭될수록 옅어지는 기억은

빛바랜 사진처럼 애틋해지니

이 시절엔 나무와 가로등이 없는 길을 찾아 걷는다.


목련처럼 진하게 적시고는

벚꽃처럼 금방게 지고 마는

봄은 참 쉬운 계절.


편지를 쓰자.

이 밤엔 하얀 종이에 쓰려던 말들을 적어보자.

구구절절 토해낸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기 전에

꽃잎에 덮이고 말 테니 잉크를 과하게 묻힌다.


밤이 지나 아침쯤엔

바람이나 빗자루나 마음 따위에 쓸려

한 잎이라도 가닿을지


봄밤을 함께 걸으면

사랑한다는 말이면

그것으로 온전한 만개를 생각했던 시절,

그 밤과 그 말이 참 연약하다는 걸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또 봄밤이 왔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당신의 기억처럼

이번에도 혼자만 하얀 모습으로 결국 오고야 말았다.


거리엔 밤 편지의 글자들이

봄처럼 흐드러져 있다.





[사진 : 춘천, 대한민국 / 샌프란시스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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