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밝고 활기찬 기운으로 살아가시는 이용기 농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평소에 볼 수 없던 숨은 표정들을 알게 됐습니다. 농사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삶의 모습이 이름 속에 녹아있는 이용기 농민에게, 이 글이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는 2017년 5월 30일 이뤄졌습니다. 글의 내용 역시 2017년의 시간을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진주시 미천면에서 가지 농사짓는 이용기라고 합니다. 올해 52살이고, 농사지은 지는 7년 정도 됐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부모님께 농사를 배우고, 7년 정도 준비를 했지요. 부모님은 지금도 같이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농사는 농업인 대학, 농업 마이스터 과정, 진주시 농업인 교육, 온새미로 연구회를 통해서 되는 대로 배웠어요.
주요 작물로 가지를 택했던 건, 버릴 게 없어서 그래요. 가지의 뿌리, 잎, 꽃, 꽃받침, 열매 모두를 달여서 가지 즙을 만드는데, 효능이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열매 자체로도 훌륭하고, 말려서 건가지 나물을 해도 되고. 쓸모가 많아요.
농장으로 향하는 길
탐스러운 가지와 자연스러운 농장의 모습
온새미로 농법은 매실, 감자, 담뱃잎, 고삼, 녹차, 코스모스, 쇠비름 같이 자연물로 약재를 만들어서 농산물에 쓰는 겁니다. (-‘김종호 농민, 나눔의 흔적’ 편 참조) 매실은 균제, 감자나 고삼은 영양제 등으로 쓰여요. 옛날에 소가 코피가 터지면 고삼을 먹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원리가 적정한 과정을 통해서 작물에도 적용이 되는 겁니다.
이 농법은 단순히 친환경 약재를 쓰는 게 전부가 아니라 농사 방식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해요. 오늘은 충제 다음은 영양제. 병이 오거나 문제가 오기 전에 계획적으로 농산물을 관리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관행 농법 할 때보다 몇 배는 부지런해야 해요. 농법을 배우는 사람들 중에서 그걸 못 견뎌서 포기하는 사람도 꽤 있었어요.
인터뷰 전, 일을 끝마치고 있는 이용기 농민의 모습
그러고 보면 저는 부지런한 건 자신 있어요. 농사 전에 85년쯤부터 건축업을 했었어요. 그때 제 고객들이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a/s 연락이 올 정도로 서로 신뢰하고 있어요. ‘농민의 발소리를 듣고 작물이 자란다.’라는 말이 있어요.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보고, 더 관심을 가져야 좋은 작물이 자랍니다. 어쩌면 사람이랑 똑같아요.
애초에 귀농하면서 친환경 농사를 준비했었어요. 농사와 농업에 미래가 없다고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라 믿었어요. 잘 키운 안전한 농산물로 친환경 급식 같은 탄탄한 판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마음먹은 것들은 다 해봤어요. 기르는 염소로 제초를 하고, 가지 먹는 벌레는 손으로 잡았지요. 염소는 신기하게도 보통 풀은 먹고 가지는 안 뜯어먹더라고. 청벌레가 가지를 먹는데, 약을 안 친다고 손으로 잡고 닭을 풀어서 처리했고요. 동네 사람들이 저 하는 거 보고 미쳤다고 많이들 그랬어요.
친환경 제초를 담당하는 염소들
농장을 지키는 작지만 든든한 녀석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가족이었어요. 결혼하고 애를 둘 낳을 때까지는 관행대로 살았고, 관행대로 키운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직장생활로는 아이들을 키우기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정적인 건 셋째를 낳을 때였어요. 아이가 팔삭둥이였거든요. 셋째를 인큐베이터 속에서 키우다시피 하면서 담배도 끊었어요. 그때 제 삶이 많이 변화했어요. No보다 Yes로의 전환. 얼른 나와서 부모 품에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첫째가 셋째랑 띠 동갑이라서 외로울까, 생각하다 보니 다둥이 아빠가 됐습니다. 맏이가 스물다섯 살, 여섯째가 일곱 살입니다. 귀농할 때 여섯 남매였어요. 아이들마다 제가 붙여준 별명이 있어요.
첫째는 제일 먼저 나왔으니까 개척자, 그림을 그려요. 나중에 그 재주를 살려서 우리 농장 홍보도 해볼 계획입니다.
둘째는 나눔이, 지금은 방위산업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꼬박꼬박 돈을 모아서 가족들에게 보태고 있어요.
셋째는 사랑이, 남매들 딱 중간에 껴서 스트레스가 많을 거예요.
넷째는 행복이, 다섯째는 멋쟁이고 쌍둥이랍니다.
여섯째는 기쁨이. 그리고 이제 12개월째인 일곱째 축복이까지.
일곱째까지 생긴 건 말 그대로 축복이라 생각해요. 농장 이름도 ‘육 남매가 살아가는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칠 남매로 바꿔야지요.
육 남매 시절 가족사진, 막둥이 축복이의 2019년 모습
농사는 우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니 약을 칠 수가 없지. 자식들은 여기서 같이 일도 하고, 뛰노는 놀이터로 삼기도 해요. 농사와 자연에 대해서 배우는 학교이기도 하고요.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나요. 밤에는 별도 많이 보여서 참 좋고...
일요일마다 아내와 아이 넷과 함께 난타연습을 하는데, 평소에 농사일로 못 놀아주기에 이 시간만큼은 꼭 지키려 해요. 지금 하우스를 세 동 하고 있는데, 빚을 다 갚으면 한 동으로 줄일 겁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요. 같이 난타 공연을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우리 칠 남매 농장 가지 홍보도 하고.
농장 곳곳에 새겨진 아이들의 흔적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가지 농장
세상살이는 부메랑 던지는 것과 비슷해요.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언제든 돌아와요.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잘 된다고 욕심을 부리면 화가 됩니다. 땅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야 해요. 그래서 우리 집 가훈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없어도 웃을 줄 알고. 뭐든 조금 모자란 듯이 하는 게 좋아요.
농사지으면서 제일 좋은 순간은 내 손으로 키운 농산물로 사람들에게 베풀 때입니다. 내 농산물을 맛있다고 말해주실 때 마음이 자랑스러워요. 누군가 드시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농산물 말고도 농사지은 사람을 신뢰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
소중한 마음이 생긴다.
텃밭에 바라는 점은, 조합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진주텃밭’이 내 텃밭이고 내 것이라고 여긴다면 가능한 일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생산자 소비자 할 것 없이 다양한 교육을 더 많이 받아야 해요. 그리고 조합원 중에서 생산자 농민들이 앞장서서 노력하고 헌신해주면 좋겠어요. 조합원이 한 사람의 생산자 농민이나 농산물에 실망하면, 전체 생산자의 신뢰도 함께 잃는 거라 생각해요. 모두가 어려운 여건이지만,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꼭 해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