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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낙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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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혜윤 Sep 22. 2019

너를 처음 만난 날

아침이 출산 후기 _ 출산 그리고

"안녕, 해든아."


빠르게 전날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었다.

첫 케이스였던 나는 8시에서 9시 사이에 수술실로 가게 될 거라 했었고

오빠랑 어떡하냐며 곧 아침이 실물을 보는 거냐고 노닥거리면서 혈압을 재고 있는데 

OP 갈게요라고 복도에서 소리를 치며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나? 지금? 왜 갈 거라고 말도 안 해주고?라는 생각이 잔뜩 머리에 떠올랐지만 뭐

오빠를 포함해서 나만 빼고 모두 태연하고 차분하길래 나도 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마어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옷을 다 벗고 위에 천 한 장을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또 덮었다.

그러고는 침대를 끌어 수술실 앞까지 왔고, 

머리에 파란색 일회용 샤워캡 같은 걸 씌워주고는 잠시 기다리는데 무서워서 울 것 같았다. 

오빠는 계속 크게 숨 쉬라고 했지만 너무 떨고 있던 탓에 애써 크게 들이 쉰 숨도 짧게 짧게 끝나 버렸고,

부끄러워서 열심히 참았지만 너무너무 무서워서 울기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역시 쫄보였다고, 왜 나는 이렇게나 쫄보면서 쫄보인 줄 모르는 거냐고 한탄을 하고 있을 때

오빠는 우리 생일날, 내가 처음 티 익스프레스 타려고 기다리던 때, 점점 줄이 짧아질수록 바들바들 떨었던 내 모습을 웃으며 이야기해줬다.

"맞아. 티 익스프레스도 타고나니까 또 타고 싶었어."

그리고 금방 끝날 거라고, 괜찮다고 해 주었던 마스크 쓴 사람들의 웃음과 친절은 정말 위로가 되었다.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만 빼고 모두 분주했다. 

겁에 질린다는 게 그런 거였다.


척추마취를 하고 곧 빠르게 삐삐삐-하는 소리가 들렸고 진정제를 놓아주겠다 차분한 목소리를 들었고

지나가는 간호사 선생님이 아빠가 더 긴장한 거 같다고도 웃으며 얘기했고

오빠는 자주 내 상태를 살피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거려줬다.


가로로 아래쪽 배를 그어 피부가 갈라지고 또 여러 번 그어내고 자궁을 열고 

아주 얇은 보라색의 막을 아주 조심스레 갈랐을 때 아침이 머리카락이 보였고 오빠는 그 순간에 울컥했었다.

목 바로 아래에 가려진 천 너머에서 아주 잠깐 아기 소리가 들렸을 때 

나도 모르게 이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다.

그러고는 마음이 놓이고 아주 편안해졌다.

그때부터 잠시 후 사람들의 웃음과 밝은 소리들이 섞이며 또렷하게 아침이가 우는 소리가 가득 들리고 

언제부터인지 이미 나는 주륵주륵 울고 있었다.


뽀얗게 예쁜 아침이를 가까이에서 봤고 "안녕, 해든아."하고 인사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가득 채워진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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