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출산 후기 _ 임신과 준비
임신 기간 내내 큰 이벤트 없이 아주 건강하고 순조롭게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감정을 다스리는 일,
잦아진 건망증과 피곤함에 더해 집중력은 바닥을 치면서 일하기가 버거운 속상함,
헐겁고 느슨해지는 뼈에 10kg을 몸에 더해 마디마디가 타는 듯한 만삭의 일상은
견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견뎌 냈지만
아가가 잘 자라주고 있는 기쁨과는 별개로 아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때에도 어스름하게나마 느꼈던 것은
이성적으로 얘기하자면 호르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지만
어쩌면 이 존재에 대한 사랑의 신체적 반응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이 힘듬을 그저 버텨내지는 못할 거라 떠올렸었다.
우리는 선택 제왕으로 아침이의 분만 방법을 정했다.
출산의 고통과 수반되는 위험에 대한 불확실성보다
예측 가능한 고통과 위험에 맞춰 준비하는 것이 훨씬 더 편안하게 느껴졌고,
나에게는 자연 분만이 조금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기능적으로써의 비인간적인 느낌인데, 물론 사람은 동물이지만 가장 동물적인 경험이 될 것 같았고
여자로서 겪고 싶지 않은, 꽤 수치스럽기까지 할 경험들을 생략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기도 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하루 전 입원을 한다.
간단한 검사들을 하고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12시부터 금식을 한다.
점심 만찬을 즐기고 싶었으나 그 대신 한동안 가지 못 할 미용실을 다녀왔고,
저녁 만찬(그래 봤자 떡볶이와 김밥이었지만)을 병실에서라도 즐기고 싶었으나
나를 입원시켜 놓고도 오빠는 바빠서 금식을 해야 하는 12시가 지나서야 병실에 왔다.
수술에 대한 설명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준비가 되어있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이것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긴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오빠 혹시 내가 죽으면 재혼은 절대 안 돼."
"ㅎㅎ그럼 같이 따라 죽을까?"
"그것도 좋긴 한데 아침이가 너무 혼자 지내야 하니까 아침이랑 둘이서만 살다가 와,
결혼은 안 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는 것도 안돼. 내가 그 여자 괴롭힐 거야.
괴롭히는 데 오빠가 마음 아파하면서 나 원망하면 둘 다 부셔버릴 거야."
"나는 오빠 만나서 이렇게까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구나 너무 신기한데,
오빠보다 아침이를 더 사랑하게 되면 도대체 얼마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남편만 내려다 보고 또 보면서 밤새 잠이 들지는 않았고,
그렇게, 낯섬과 놀라움과 인내의 연속이었던 39주의 시간을 쌓고서 9월 16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