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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Jun 17. 2019

오늘의 영화, 가버나움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의 힘을 믿는다. 영화가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최소한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생각하게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 나딘 라바키 감독



이 영화 하나 보려고 연차를 썼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는 영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보면서 되게 죄스럽고 괜히 미안했다. 그들의 지옥 같은 현실을 그저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일상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내가 당연하다고 누려왔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여러 군데에서 와 닿았다. 특히 초경을 한 여자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은 축복이 가득했는데 사하라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시작이라서.

어린 나이임에도 어린아이 일 수 없던 자인. 자기 부모를 고소하겠다는 자인의 모습에서 부모를 향한 원망과 더불어 세상에 대한 분노까지 느껴진다. 그런 부모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

자인의 외침이 너무 슬펐던 건, 최선을 다했다는 부모의 절규에 마음이 저렸던 건, 요나스와 라힐의 미소가 쓰라렸던 건, 가기 싫다는 사하르가 짐처럼 끌려가는 모습이 경악스러웠던 건 모두 다 한 가지 의미겠지.

사람이 엄청 충격을 받으면 할 말을 잃는다고 하던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가 딱 그랬다. 뭔가 세게 얻어맞을 것 같은데 누가 날 때린 건지, 어디를 맞은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 어디가 아프다고 정확하게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영화 끝에 나오는 자막에 출연진들의 상황을 보면 다행이다 싶다 가도 이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말도 쉽게 내뱉을 수 없고  그 어떤 코멘트도 간단히 쓸 수 없다. 복잡한 감정.

그냥 확실한 건 거대한 현실을 내가 눈으로 목격했고 아직 소화 중이며 소화가 끝나면 내 안에서 작게나마라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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