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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Jan 30. 2023

엄마는 우주야

2023.01.30.

엄마는 우주야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인 저녁이 있었다. 갑작스럽고 흔쾌히 잡힌 약속으로 여러 사람이 우리집에 모였다. 세 쌍의 부부와 한 명의 아이. 복중 태아인 로마를 포함하면 총 여덟. 뉘엿뉘엿 해가 저물 무렵 시작된 자리는 얼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모자람 없이 즐거운 수다였고, 역시나 그날의 주인공은 한 명의 아이, 서로였다.


최근 우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서로는 장난감도 우주비행사와 우주선이었고, 티비로 송출되는 우주 이미지에 완전히 빠져 우리들에게 대화할 틈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러던 중 내가 그에게 다가가 우주선을 태워 주겠다고, 눈을 감아보라고 한 뒤 번쩍 들어 올려 소위 비행기를 태워주었다.


재미있는 건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는 아이들의 특성은 서로에게도 장착되어 있는지라, 여러 차례 힘을 쓴 나는 서로의 아빠인 헌재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렇게 아빠표 우주선도 거듭된 항해를 마치고, 이어서 출항한 것은 제임스. 그는 역도를 하듯 서로를 모로 눕힌 상태로 들고 거실을 내달렸다.


그때 서로가 마치 자신이 비행기 혹은 새가 된 듯이 두 팔을 양옆으로 펼치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살아가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흉내내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지 않을까 싶은, 눈부신 광경. 우리는 대단한 서커스라도 본 듯 일제히 환호했다.


그러나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서로의 비상(飛上)이 아니었다. 제임스호가 항해를 마쳤을 때, 우리 중 누군가 엄마에게도 태워달라고 하라며 부추겼다. 서로는 엄마는 우주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엄마는 무어냐 물었더니.


“엄마는 우주야”


엄마가 우주라니. 이보다 더한 사랑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고백을 받는 서희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덤덤했었나 기뻐했었나. 아님 덤덤히 기뻐했었나. 어쩌면 이미 둘은 익숙할 수도 있으리라. 서로 고백을, 사랑을 하는 일과 받는 일 모두에.


나도 우주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우주가 되어야 할까. 어떤 우주를 만들어주어야 할까. 이런 고민과는 별개로, 수민은 벌써부터 로마의 우주 그자체인 것도 같다. 엄마 뱃속이라는 우주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까, 로마도 언젠가 “엄마가 내 우주”라고 털어놓지 않을까?


로마의 태동을 느낀 순간부터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어쩌면 이 태동이 내가 수영장에서 늘 하는 턴은 아닐까. 저 끝에서부터 헤엄쳐 온 로마가 날렵하게 몸을 회전해 다시 반대편으로 박차고 나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게 우주보다도 깊은 엄마 뱃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매일 켜보는 앱에서 로마는, 오늘이 임신 150일째이며 우리가 만나기까지 앞으로 130일이 남았다고 일러준다. 엄마의 보조를 잘 부탁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여전히 수다스럽군, 피식하는 와중 눈에 들어오는 로마의 말.


“지금은 양수 안에 있지만 수영을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걱정 말렴, 내가 잘 가르쳐 줄게. 깊은 바닷속까지 탐험하게 해줄 거니까, 지금 이대로 건강하게 태어나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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