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0.
은호가 태어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신생아 꼬리표를 떼고 어엿한(?) 영아로 성장한 것이다. 병원서 사흘,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낸 뒤에 입가를 하였으니 본격적인 육아는 3주가 채 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을 지난날이 고작 한 달 남짓의 일이라 생각하니, 시간이란 게 참 새삼스럽다.
내 손가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치던 수민이 들으면 약 오를 소리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은호는 수월하게 세상 빛을 봤다. 수민과 내가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혼자서 벌써 나올 채비를 마친 상태였고, 그리 길지 않은 진통 끝에 커다란 울음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나는 얼떨떨한 채 탯줄을 잘랐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다.
그 순간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기보다는 막 엄청나게 극적인 감정이 찾아오지 않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차분했었던 것 같아, 기억이 안 난다고 표현을 하게 되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감각과, 다분히 현실적인 안도감의 조화 정도였달까.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한껏 울고 있는 은호를 받아안고 처음으로 건넨 말은 선명하다. “앞으로 잘 해보자”를 여러 차례 거듭했더랬다. 앞에 뭐가 기다릴지 잘 해보는 건 또 무엇인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지만, 그냥 그 말만 입에서 튀어나왔다. 돌아보니 어쩌면 그건 스스로에게 건넨 메시지였던 것도 같다. 그렇지, 잘 해봐야지, 그게 무엇이든.
그렇다고 내가 일순 다른 사람이 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여전히 집에 은호가 있다는 게, 내가 이 아이의 아빠라는 게 조금은 낯설다. 소위 말하는 분유 버프가 발동해서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자 노력하고, 뭐 그러지는 않는다. 다만 차근차근,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이런저런 육아 기기들의 사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잠이 조금 부족한 것 말곤 아직 그렇게 힘이 들진 않는다.
며칠 전엔 잠에 빠진 은호를 사이에 두고, 수민과 나까지 세 사람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허공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요상한 소리들을 내는 아이를 보고 있다가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하지, 하고 수민에게 물었더니 그는 은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눈물이 고였던 것 같기도 하고.
육아라, 한땐 나와 전혀 관계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여겼었는데. 이게 다 이 세계의 일이라니. 기쁘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