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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Of God

늘상 두려워지는 불가항력

by 전재성
cate.jpg 미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남겼던 2005년 8월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보통 배의 선교에서 가장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은 인근에서의 조난이나 해적, 그리고 기상악화로 인한 기상특보를 알리는 URGENT 경보다. TELEX와 연결되어 있기 떄문에 경보와 함께 도트 메트릭스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로 순간 선교가 시끌시끌해지기 마련이었는데 그런 요란한 소리는 '반드시 제대로 확인'하라는 경보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에 당직 항해사는 그 내용을 꼼꼼히 살피고 정말 급한 경우,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캡틴에게 알려줘야하는 의무가 있다.


예전 자정을 지나 멕시코만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접어들기 전부터 열심히 VHF를 통해 TS(Tropical Storm : 열대성 폭풍)의 발생과 그 경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미합중국 해양대기청)의 녹음방송을 중계해주던 미해양경비대에서 갑작스레 비상경보를 발하며 TS가 Hurricane으로 바뀌었으며 당장 MHC(Miami Hurricane Center : 마이애미 허리케인센터) 명의로 위험구역과 함께 그 구역 안의 선박들에게 허리케인 경보를 내렸다. 애초 허리케인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리케인의 발생과 그로 인한 경보에 대해서는 하나도 놀라지 않았지만 막상 TELEX를 통해 받은 위험구역을 보고 차트상의 우리 선위와 항로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선장님 방으로 전화를 해야했다. 이미 태풍의 영향권안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항로의 변경없이 진행하면 바로 호랑이 아가리로 기어들어갈 상황이었던 것.


유가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지만 선교에 올라온 캡틴과 함께 해도실에 펴쳐져있는 차트에 텔렉스에 표시된 위치들을 기입해두고 가항반원 방향이었던 좌현측으로 30도 가깝게 변침선을 긋고 바로 선수를 돌렸다. Night Order Book에도 계속 들어오는 경보를 확인하고 우리 항로를 위협하는 태풍의 움직임이 감지될 경우 지체없이 Call하라는 내용을 적어두고 캡틴은 내려갔고 나머지 당직시간 내내 나와 타수는 윙브릿지에서 양팔을 벌리고 바우스발롯법칙 - 바람을 등지고 서면 북반구에서는 왼손의 앞쪽, 남반구에서는 오른손 앞쪽에 저기압의 중심이 위치한다는 법칙 - 을 새삼 실습하고 있었다는.


그 태풍이 2012년, 10번째로 태어났던 허리케인이었고 이름은 ‘DANIEL’이었다. TD(Tropical Depression : 열대성 저기압)로 금방 변할 거라는 MIAMI NATIONAL HURRICANE CENTER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이후 Daniel은 Category 4까지 발달하여 이후 일주일간 맹위를 떨쳤다. 본선은 태풍의 진행경로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미리 변침을 한 덕분에 목적지에 이틀 늦게 도착하기는 했지만 무사히 태풍을 피해갈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대한민국은 고기압 덩어리가 계속 한반도 상공에서 버티는 바람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고 여름을 넘어갔지만 어디로 도망갈 수 있는 배와 달리 - 그게 더 위험하긴 하지만 - 그냥 하늘에 빌 수 밖에 없을 태풍의 내습은 여전히 두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이제 우리나라 상공의 고기압 덩어리들이 그 기세를 잃고,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올라갈만큼 올라간 수온들이 장차 다가올 저기압들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면 한여름엔 피해갔던 태풍들이 가을에 줄지어 몰려오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맞닥들일 수도 있을테니....그저 Act Of God 앞에 기도드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2209061600_hinnamno.jpg 2022년 9월,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태풍 힌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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