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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Jul 01. 2016

열한 번째 잔, 콘빠냐

작은 우산의 맛

  까만 에스프레소 위에 뽀얀 휘핑크림이 삼각뿔 모양의 유빙처럼 떠 있었다. 그 속이 궁금해 수저로 살짝 밀자 얇게 녹은 하얀 거품만 표면에 남기고 크림은 잔 벽에 가서 붙는다. 사이 삼각 뿔로 쌓였던 크림은 잠깐 사이 형체 없이 다 녹아서 끌어 오르는 우유 냄비처럼 보였다. 카푸치노보다 기름지고 반지르르한 거품이 까만 에스프레소 위로 우산처럼 씌워졌다. 위태롭게 덮인 크림에 입술을 살짝 대고 마신 뒤 잔을 기울이면 쌉쌀한 에스프레소가 밀려 들어온다. 크림이 덮은 혀 위로 지나가는 에스프레소는 쓰지 않았다. 쓴맛을 가려주는 커피잔 위에 이렇게나 작은 우산.  


  갑자기 시작된 빗소리에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는 테라스를 바라보았다. 식당 전면으로 설치된 차양을 비가 빠른 박자로 두드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오전 내내 비가 없어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미뤄둔 일을 급하게 해치우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햇빛이 비칠 듯 얇은 구름이 끌고 온 소나기 인지 날은 여전히 밝았고 그에 비해 빗방울은 상당히 굵었다. 어디선가 우산을 채 펼치지도 못하고 못하고 비를 맞았는지 여자의 짧고 경쾌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새로운 볼거리에 애먼 커피잔만 식어가고 있었다. 


"좋다."

"비 좋아해요?"

"보는 건 좋잖아요?"


  늦은 여름 소매가 없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조금 춥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너무나 평안한 표정이었기에 묻지는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는 비도 아름답다. 그때까지는 좁은 소극장 관객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담담하게 관람할 수 있다. 수원지가 까마득히 높은 곳인 물줄기들은 알알이 떨어지다 속도를 높여 길쭉하게 몸을 키운다. 눅눅해진 땅에서 풍기는 흙냄새와 아픈 풀 향기, 뜨거웠던 아스팔트가 식어가며 내는 땀 냄새가 풍긴다. 찬찬히 바라보면 나와 관계없는 슬픈 사건이 발생하는 영화를 관람한 것 같다.

그래 나는 비에 젖지는 않았다.


비통한 소리와, 아득한 영상과, 우울한 냄새들.


  빗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렇다. 촘촘하게 뿌려지는 빗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산 아래로 들이치는 물방울들이 바짓단을 축축하게 타고 올라오고 젖은 옷자락은 불쾌하게 들러붙는다. 통풍이 좋아 쾌적했던 신발의 틈으로 빗물이 축축하게 스며들고, 신발은 곧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묵직해진다. 집에 도착하기 전 까지는 발을 빼낼 수도 없다. 하루 종일 불쾌한 촉감이 발을 감싸고 시간이 지나 꼭 들어차게 불은 연한 피부는 쓸리고 까져 피를 본다.

 

이기적 이게도 

우산을 가지고 나온 날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

밖에 나갈 일정이 없는 날은 비가 와도 좋겠다.

타인의 우울함으로 위로받고 싶다.  


"어때요? 우린 우산 있잖아요?"


  빗발은 점점 가속을 붙여 떨어졌고 식당 밖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었다. 얇은 시폰 같던 구름도 겨울이불만큼이나 두꺼워졌는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비가 시작될 때 짧게 비명을 질렀던 여자는 우산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딘가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들어가 이 비를 기분 좋게 구경하고 있기를 바랐다.



  까만 에스프레소 위에 뽀얀 휘핑크림이 삼각뿔 모양의 유빙처럼 떠 있었다. 그 속이 궁금해 수저로 살짝 밀자 얇게 녹은 하얀 거품만 표면에 남기고 크림은 잔 벽에 가서 붙는다. 사이 삼각 뿔로 쌓였던 크림은 잠깐 사이 형체 없이 다 녹아서 끌어 오르는 우유 냄비처럼 보였다. 카푸치노보다 기름지고 반지르르한 거품이 까만 에스프레소 위로 우산처럼 씌워졌다. 위태롭게 덮인 크림에 입술을 살짝 대고 마신 뒤 잔을 기울이면 쌉쌀한 에스프레소가 밀려 들어온다. 크림이 덮은 혀 위로 지나가는 에스프레소는 쓰지 않았다. 쓴맛을 가려주는 커피잔 위에 이렇게나 작은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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