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월권과 저항
강장동물의 경우 입과 똥구멍이 일치한다. 먹고 소화한 후 배설물을, 먹었던 구멍으로 다시 배출한다. 이런 경우 똥구멍의 침묵적 기능과 운명적 가치는 논할 문제가 아니다. 지배하는 것과 지배당하는 것, 순응하는 것과 도전하는 것이 같을 경우, 계급의 구분은 의미가 없고, 입과 똥구멍의 위치적 구별의 의미도 없어진다.
하지만, 자연법칙에 의해 진화의 성숙은 입과 똥구멍을 구별하도록 되어 왔다. 그리고, 대소변의 배출기능이 분화되어 있다. 똥구멍은 성기가 아니다. 따라서, 배설기능이 주된 기능이고, 입 역시 성기가 아니다. 섭취기능과 대화기능, 거짓을 말하는 기능 등 입은 자유로운 공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똥구멍보다 많은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똥오줌을 가리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3~4세 사이에 똥오줌을 가릴 수 있다. 그러다가 오랜 기간 똥오줌을 구별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지긋하게 들면 똥오줌을 구별하지 못 하게 된다. 인간은 발전의 순서만큼 퇴화의 순서를 겪는다.
만약, 똥구멍이 입이 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배설의 기능을 차치하고 입이 되려고 한다면 어떠한가. 입이 똥구멍이 되려고 하는 현상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입이 나불거려 똥구멍이 화가 난다면, 그래서 똥구멍의 개방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똥구멍의 직전부터 입구멍까지 똥이 차 올라 결국에는 입으로 똥을 토할지도 모른다.
역할의 방임이며, 기능의 모순이고, 월권과 저항간의 참극일 뿐 아니라 질서의 붕괴이고 체계적 기능의 정지이다. 이러한 일은 가급적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입과 똥구멍이 역전되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