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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지배자와 피지배자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Mar 18. 2025


계급과 계층, 지위와 직위가 구분되면 이상하게 견해가 대립되고 이익이 상충하며 투쟁과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 이유는 매우 간명하면서도 미묘하다.


어느 한쪽은 자신들의 주장이 논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어느 한쪽은 궤변이라고 주장한다. 궤변은 어떤 주장이나 실제로는 거짓말이 진실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으로 논리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궤변을 주장하는 대변인들은 그것을 통해 어떤 형태와 양으로든 취할 수 있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 VS 노동자, 두 계급의 갈등구조 속에서 역사가 진행되다가 자본주의 자체의 내재적 모순, 잉여가치 생산을 위한 노동의 착취 때문에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그것에 대하여 많은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이 찬동하면서, 그것을 엄격하게 이해하지 못 하면서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선동가와 급기야 이념적 전쟁으로까지 전화되어 세상이 혼돈에 빠져 들었으나, 현재는 일말의 추앙과 추종세력의 잔존 이외에 남은 것이 없이 자본주의가 여전히 현존한다.


지배자는 피지배자에 대한 권력과 실력행사를 통해 계급과 지위를 유지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외적으로 피지배자들로부터 일정한 의사결정력을 위임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시스템적인 체제를 만들어 놓고 권력을 행사한다.


사실 사회의 계급이나 계층은 명시적으로 구분되는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고 매우 불분명하게 구분되는 영역이 더 많다. 노동자-노동귀족-노동간부-지도자-정치인-권력자 등 구분하려는 노력을 해 보자면 1:1의 대립상충적인 분류의 체계가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의 대표자, 노조의 간부, 정치인, 권력가는 특정하게 분류될 수 있다고 믿는 계급과 계층의 주장을 대신하거나 대표한다고 믿고, 그렇게 믿도록 만든다. 사실은 대표자들 각자가 행사하는 권력이 위임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우물에서 유래하고 있는지 그 실체적 원인을 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표자들은 외적으로 위임인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을 가장하지만, 사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고 쟁취하려는 데에 실재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어느 집단의 대표자가 되었든간에 배타적 이익을 위해 표어를 생산하여 발화하고, 다소 과격한 행위, 시위나 집회, 선동을 해야 위임인들의 시선에서 역할과 임무를 잘 하고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정쟁적 관계의 대척점에 있는 세력간, 경제적 이익의 배분 다툼의 배척점에 있는 세력간에 갈등과 분쟁은 매우 명확하고 과격하지 않을 수 없다. 쎄게 질러야 적정한 타협을 볼수도 있다는 계산도 작용하는 것이다.


지배자들은 피지배들과 한통속이라는 점을 상시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한다. 지배자들의 존속여부는 피지배자의 머릿수와 위임의 지속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해결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발돋움하지 않는다. 위임자들의 감성과 흥분에 분위기를 맞춰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국가나 사회 내에서의 갈등과 대립은 대외적 위기 하에서 수면 아래로 침잠하게 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다. 그 갈등과 대립의 강화와 유지는 오로지 지배자들의 지배욕과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대표자라는 직업적 수익을 위해 발생, 유지, 강화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위임인들의 성분이나 색깔로 갈리게 된다.


쉽게 해결될 수 있고 평온한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지배자들의 사적 탐욕과 피지배자들의 한정된 위임행위 때문에 국가, 사회, 단체가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어쩌겠나, 인간의 생래적 본질이 그러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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