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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은 Jun 17. 2024

시어머니

남자들이 모르는 여자의 언어가 있는 듯하다.

아니, 그냥 단순히 생각하는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들의 그 언어를 이해 못 하는 것 같다.

보여지는게 전부고, 그 말의 속 뜻을,

여우짓처럼 앞뒤 다르게 교묘히 행하는 그 행동을

남자들은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모른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는 마음이 여리신 분이라고

나에게 오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처음엔 그런 줄만 알았다.

늘 웃으시며 부드럽고 상냥하게 전화하셔서

그게 아버지께서 옆에 계실 때만 그랬다는 것을,

본인이 무언가 부탁할 때만, 필요할 때만 그랬던 것을,

어느 날은 너무나도 퉁명스럽고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하셔서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물은 적도 있었다. 어머니를 겪고 경험한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있다. '아~혼자 계시는구나~' '아~아버지께서 옆에 계시는구나~' 이중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겪고 나서야 나는 어머니가 참 얄밉고, 간사해 보인다. 나는 보이는 것들이 남편과 아버지는 모른다. 그저 연약하고 마음 여리신 불쌍한 여자일 뿐이다.


남편 20대 초반에 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빚으로 인해 참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2년 만에 어머니께서 재혼하신다 하셔서 신랑은 싫은 마음에 어머니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나쁜 말도 했었다 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우리 버리고 혼자 딴살림 차려 가시나 싶은 원망과 미움이었다 했다.


재혼을 해도 이렇게 사랑받고 살 수 있구나~

어머니를 바라보시는 아버지 눈빛에서 사랑받고 지냄을 느낄 수 있었다. 연애하는 4년 동안 종종 찾아뵙고 놀러 가도 두 분 사이에 큰 어려움도 없었고, 그저 금실 좋은 그런 부부였다. 연애만 계속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나이가 어린것도 아닌데 왜 연애만 하고 있어?

결혼해라~ 난 너 힘들게 안 할게. 너희 둘만 잘살면 된다~"  하시던 어머니셨는데,

결혼식 전 혼인신고 먼저한 어느 날,

어머니랑 둘이 차에 있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나에게 할 말이 있다 하셨다.

" 나, 혼인신고 안되어 있다."

"네? 왜요? 혼인신고 안 하고 그냥 사신 거예요?"

"아니. 너희 아버지, 이혼을 안 했거든."

"네???"

 그 시절, 자식들한테 이혼자녀 만들기 싫었다나?

그 부인이 춤바람이 나서 밖에 싸돌아 다니고 그래서 이혼은 자식한테나 나한테나 흠이 되니 각서 쓰고 다른 살림해도 일체 관여 없이 각자 살자고 했단다.

 이게 지금 조선시대의 일인가? 싶을 만큼 띵~했다.

그럼 조선시대로 치면 어머니는 첩(?)이 되는 건가?

진짜, 뭐라 말이 안 나왔다. 근데 이 사실은 남편은 알고 있는데 나한테 말 안 한 건가? 왜 혼인신고 딱! 하고 나니 나에게 말하는 걸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남편도 몰랐던 일이란다. 당연히 혼인신고 하신 줄 알았다고…그런 상황인걸 알았다면 가지 말라고 붙잡았을 거라고… 저러다 아버지 먼저 돌아가시면? 어머니 낙동강 오리알 될 텐데, 본처가 살아있는데, 사실혼은 법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을 텐데, 형은 아직 장가도안 갔고 우리를 더 의지하시는 듯한데,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말을 내뱉은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는 머릿속도 복잡하고 골머리가 아팠다.


결혼식날, 식을 다 끝내고 저녁에 전화드렸더니

" 아들은 장가보내면 뺏긴 것 같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네"하시던 어머니,

신혼여행 갔다 와 선물로 드린 화장품을 받으며

"나 선크림도 다됐는데 이건 나중에 사야겠다"하시던 어머니,

"우리 집은 더운데, 너희 집 방한칸만 줄래? 여름 내내 가있게~" 하시던 어머니,

집들이 초대겸 우리 집 오셔서 날 보고 웃으시며

"너 혼자 이 넓은 곳 다 치우려면 힘들겠다~"하시던 어머니,

아침 8시에 전화 오셔서 "멸치 볶아놓았다~들고 가라"하시는 어머니, (정작 멸치볶음 내 손바닥만 한 반찬통)

'옥수수 가져다 줄 겸 나갈까?' 한다고 전화하셔서

"저 오늘 교육이 있어서 어떡해요?" 했더니

"그럼 이거 어째라고!" 버럭 짜증내시던 어머니,

남편한테 어머니 짜증내신 다고 자기가 받아오라고 나 교육 가는 거 말씀드려라 했더니 "다른 사람은 교육도 안 가던데 무슨 교육을 그리 다니냐고" 하시던 어머니

나한테 다짜고짜 짜증 낸 것도 화나는데 교육얘기에 너무 화가 나서 다음에 만나면 얘기드려야겠다 했더니

아버지 앞에서 제 얘기 듣자마자 바로 아버지 눈치 보시며 "어머~내가 언제~~ 나 안 그랬다~" 하시며 웃으시던 어머니,

그때의 내가 못마땅하신 건지

" 너 시집살이해 볼래? 시집살이 한번 시켜볼까?"

농담인 것처럼 웃으시며 말하시는 어머니,


그동안의 여러 일로 남편한테 어머니가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 부담스러운데, 나한테 전화 와서 저렇게 안 하시면 좋겠다 해도 '한 귀로 듣고 흘려라~' '그냥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 엄마, 그럴 사람 아니다.'

신혼 초, 어머니일로 싸우고 싸우다 얼마나 스트레스에 속앓이를 했던지 500원짜리 크기의 땜통이 생겨버렸다.  그러다 말싸움 끝에 도저히 못살겠다고 나 병날 것 같다고 이혼얘기 나오고 그때서야 아차! 싶었는지 밤 11시가 넘은 시간 시댁에 전화해선 도대체 전화로 어떻게 말했길래 지금 이혼하니 마니 말이 나왔다고, 시집살이시켜 볼까? 이런 말은 왜 한 거냐고 했더니 그건 그냥 농담한다고 그런 건데, 며느리가 좀 예민한 편인가? 하시는 어머니,


이런 어머니가 나는 정말 얄밉고 싫다!

사람 상대 많이 해본 나의 직업상,

어머니의 성격도, 말투도, 이미 파악해 버려서

그저 피하고 싶고,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다.

남편은 살아계셔 봤자 얼마나 사시겠냐고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하고 어머니와 잘 지냈으면 하겠지만 난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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