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 당숙, 당숙모 사랑해요

by naniverse

- 카이라가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 초대한다니 가긴 가야겠지, 가서 밥만 먹고 인사만 하고 오자. 근데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아 말도 안 통하는데


뉴욕에는 우리가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다.

내 육촌언니의 딸, 카이라였다.

내 육촌언니(아빠의 사촌형의 딸)는 50년도 전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위로는 오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었지만, 그 둘은 한국에 남았고 언니만 입양 보내졌다.

이야기할 수 조차 없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30년 전쯤 우리는 다행히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육촌이라는 것은 정말 멀고 먼 친척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한국에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언니의 오빠와는 연락이 끊어졌고, 남동생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빴던 모두가 연락을 이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니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고,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언니는 입양 후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어를 잊어버리려고 죽을 만큼 노력했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3년 전즈음, 나는 언니를 찾고 싶어 졌다.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20년 전이었다. 언니는 지금 내 나이었고 막내딸은 그때 9살이었다. (한국나이 10살)

언니의 막내딸이 SNS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인스타그램을 뒤져 드디어 그녀를 찾아냈다. 몇 번의 연락이 오간 후 언니는 말했다.

-우리 가족 8명 모두가 한국에 방문하고 싶어. 혹시라고 시간이 된다면 얼굴을 보고 싶어.

올해 여름 언니는 정말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한국에 왔고,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되었다.

나는 나의 한 달을 고스란히 그들의 위해 비워뒀다. 우리 집에서 언니는 일주일을 보냈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살면서 부모의 정을 느껴본 적 없던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 당숙, 당숙모 저를 따로 입양해 주세요.

- 나에게도 이제 한국에 가족이 있어요. 나는 정말 행복해요 고마워요.


한국을 떠나던 날 카이라는 그렇게 말했다.

- 정말 고마워요. 엄마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정말 친절히 대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다시는 멀어지고 싶지 않아요. 자주 보고 싶어요 언니

(나는 사실 그녀에게 이모 뻘이지만, 그녀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카이라는 우리의 뉴욕 방문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가이드를 해주고 싶다고 했고, 그녀의 집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시간이 되는 한 모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제안에 흔쾌히 그러자고 할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영어를 하지 못하고, 카이라와 제프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한국에 있는 내내 나는 중간에서 늘 통역을 하느라 식사할 시간조차 없었고, 우리가 영어로 실컷 웃고 떠드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미국까지 왔고, 보고 싶은 손녀지만, 이런 상황이 썩 편하기만 하지 않았던 엄마 아빠는, 아주 짧은 시간 인사를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미국까지 가서 식사도 같이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렇게 그녀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20년 만에 만났던 우리였지만, 이번은 고작 3달 만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며 반가웠다. 그녀의 작고 귀여운 집을 구경하고 자리 잡았다.

그녀는 준비한 선물은 베일리가족의 한국여행 포토북과 언니가 준비한 울블랭킷과 직접 쓴 한글편지였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그녀는 한국친구의 도움을 받아 삐뚤빼뚤한 한글편지를 썼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에,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담긴 포토북을 보며 아빠는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근사한 저녁을 준비했다.

서양식과 한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밥상이었다.

우리를 위해 그녀는 엄마에게 배운 솜씨를 발휘하여 직접 김치를 담근 터였다.

-너무 부끄러워요. 아줌마가 만들어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정성껏 만들어봤어요. 맛있게 드셔 주세요

미국음식에 익숙하지 않을 부모님을 위해 나도 혼자 담가보지 않았던 김치를 담갔다고 한다. 오늘은 또 처음으로 장조림을 만들고, 연근조림을 만들어본 그녀

고작 이틀 만에 미국음식에 질려 있던 엄마 아빠는 모처럼 쌀밥에 김치, 그리고 그녀가 만든 반찬과 함께 배불리 식사를 하실 수 있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70대 부부와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20대 부부가 함께 한 자리였지만, 시종일관 웃음소리를 끊이지 않았다.

물론 40대의 나는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게, 중간에서 통역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어린애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해야 하나 하고 걱정했던 부모님은,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며 진정으로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밥만 먹고 일어나자던 부모님이 4시간이 지나도록 집에 가자는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을 보니 그녀의 초대는 성공적이었다.

5시에 만나 9시에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정말이지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뉴욕에서의 일정이 조금 더 여유로왔다면 함께 더 좋은 시간을 보냈어도 좋았겠다는 나의 말에 물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오늘이 딱 좋았어. 더는 오버야


모두에게 고마웠다.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고 선물을 준비해 준 그녀의 정성이 고마웠다.

말도 통하지 않는 손녀뻘 어린아이들과 4시간이 넘는 시간을 지루함 없이 즐겨준 엄마 아빠의 열린 마음자세가 고마웠다.


- 엄마 뉴욕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뭐야?

- 카이라네 가서 밥 먹고 웃고 떠들었던 게 제일 좋았던 것 같아

가장 걱정했던 뉴욕에서의 일정이었는데, 엄마는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서의 4시간이 뉴욕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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