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예진 기자의 호갱 구하기
“만원이나요? 필요 없어요.” “가지 마요! 그럼 절반 값에 줄게요~.” 시장에서나 볼 수 있던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실랑이다. 이런 모습이 요즘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는 디지털 음원 서비스 사이트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직장인 이경호(30)씨는 음원 이용권 3개월 할인 행사 기간이 끝날 때쯤 정가 이용권을 해지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때마다 사이트가 또 다른 할인 혜택을 제공해 해지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도 해지하지 않았다면 정가 이용권이 자동 결제돼 지금보다 두 배 더 비싼 이용료를 냈을 것”이라며 “같은 상품을 이용하면서 비싼 돈을 내는 호갱이 될 뻔했다”고 말했다.
최근 영상을 무료로 보는 ‘유튜브’의 대중화, SK텔레콤의 새 음원 사이트 ‘플로’의 등장, ‘지니뮤직’과 ‘엠넷뮤직’의 합병 등으로 디지털 음원 서비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국내 음원 서비스 업계는 이용자가 정해져 있는 제로섬 게임 같은 구조다 보니 수요를 뺏기지 않기 위한 업체 간 가격 할인 경쟁이 과도할 정도다.
기자가 국내 이용자의 75.6%가 사용한다(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음악 이용자 동향)는 ‘스트리밍 무제한 듣기’ 서비스를 중심으로 온라인 음악 서비스 이용료(8월 13일 기준)를 살펴봤다. 멜론은 7900원 상품을 3900원에 네이버 뮤직 VIBE는 7500원 정기이용권을 첫 달은 무료, 2~5번째 달은 1000원에 지니뮤직은 첫 달엔 100원, 이후 6개월간 4500원에 플로는 T멤버십 회원에게 6개월간 50% 할인된 3950원에 벅스뮤직은 제시한 결제 서비스로 구입하면 6개월간 50% 할인된 3450원에 각각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 정가에서 40~50% 할인된 가격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득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소비자를 ‘호갱’으로 만드는 함정이기도 하다. 매번 달라지는 이용료 때문에 같은 상품을 어떤 소비자는 100원에, 다른 소비자는 4000원에 이용하는 차별이 생겨서다. 게다가 해지 신청자에게만 할인 혜택을 추가 제공하는 등 업체들의 가격 과당 경쟁은 한 서비스를 오랫동안 이용하는 일명 ‘충성 고객’을 한순간에 호갱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폐단으로 피해를 보는 건 음원 창작자도 마찬가지다. 옛 음원 사이트인 ‘소리바다’가 2002년 불법으로 판결 난 뒤 음원 창작자들은 저작권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 후 가격 경쟁에 내몰려 대중에게서 ‘음악을 돈 주고 들어야 해?’라는 핀잔까지 듣게 됐다. 현재 음원 수익 배분은 창작자와 음원 서비스 사이트가 각각 6대 4 또는 7대 3으로 나눠 갖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격 경쟁이 제살 깎아 먹기식이어서 국내 음악 시장의 전체 서비스 질을 떨어뜨린다고 경고한다. 할인 경쟁에 몰두할 게 아니라 차별화된 서비스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해외 사이트를 살펴보면 미국 유명 음원 사이트인 타이달은 이용료가 다른 사이트보다 2~3배 비싸다. 하지만 고음질 음원을 제공하고 창작자와 독점 계약해 자사 사이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제공하는 등으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해외 음원 사이트들은 이용자의 불편 사항을 조사해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고 이용자들이 사이트를 재방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 음악 시장 규모는 세계적인 규모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2010년 2994억원에서 2016년 6659억원으로 성장했다. 그에 걸맞게 시스템과 서비스도 한 단계 발돋움할 시점이다. 단순히 실시간 순위 경쟁이나 가격 할인 경쟁 같은 숫자 싸움에서 벗어나 각 사이트의 개성을 담아내는 차별화된 서비스 개발이 절실하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https://mnews.joins.com/article/23562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