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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Aug 03. 2022

잭 존슨과 대만 맥주

여름의 한가운데서 만나는, 비는 많이 오지만 기분은 좋은, 그런 날이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날. 하지만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 이왕 이렇게 된 것 집콕을 최대한 즐기자. 그런 마인드인 것이다. 이런 날이 오면, 어김없이 잭 존슨의 노래를 듣는다. 


잭 존슨은 2001년 Brushfire Fairytales라는 앨범으로 데뷔한 하와이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음악을 하기 전에는 프로 서퍼였다. 기타 한 개 걸쳐 들고 느긋한 노래를 질리지도 않게 계속 만들어 내는,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뮤지션이다. 지금도 하와이에 살면서 음악 작업도 꾸준히 하고, 해양 환경이나 지속가능한 농업 관련 활동도 한다. 오하우 섬의 환경 보존을 위한 재단도 세웠다고 한다. 진중한 한량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음악도 너무 좋다. 제일 처음 잭 존슨을 알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부산에서 카투사로 복무할 때였다. 휴일 낮에 막사 복도를 걸어가는데 어떤 미군이 방문을 열어 놓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너무 듣기가 좋아서 잠시 멈춰서서 듣게 되었다. 열려 있는 방문을 살짝 노크하고 이게 누구 노래냐고 물었더니, 잭 존슨의 On And On 앨범 CD를 보여주었다. 요즘 미국에서 정말 인기가 많은 가수라고 설명도 해 주었다. 


그날 이후로, 잭 존슨의 음악은 오랫동안 소중한 벗이 되어 주었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강렬함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차분함으로 스트레스를 희석시키는 것이다. 잭 존슨은 후자다. 아니, 잭 존슨의 음악을 꾸준히 듣는다면 스트레스 자체를 받지 않는 사람도 될 수 있을것만 같다. 


내 경우 술을 거의 못먹기 때문에 맥주 같은 걸 마시는 날도 1년 중 손가락에 꼽는다. 그 중 하루나 이틀 정도는 이렇게 장대비가 오는 날이다. 이른 오전부터,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비가 야자수를 적시는 모습을 구경하며, 잭 존슨을 한없이 듣는 그런 날이다. 외출이 불가능한, 습한 장대비가 내리는 계절의 한 복판에서 잭 존슨의 노래는 꼭 필요하다. 


예전에는 여름 느낌을 더 깊게 느끼고 싶어 과일맛이 나는 맥주를 사 마셨다. 대만 맥주였는데 파인애플 맛과 망고 맛 두 종류였다. 알콜 도수도 높지 않아 나같이 술이 약한 사람에게 딱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팔지 않아서 마시지 못하였다.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홈플러스에서만 판다고 한다) 과일 맥주가 없을 때는 칭다오와 오란씨 파인애플을 번갈아 마시기도 했다. 


아무튼 잭 존슨은 비가 오는 날 맥주를 마시며 들으면 너무 좋다. 보슬비도 좋지만 장대비가 더 좋다. 잭 존슨을 틀어 놓으면 태풍이 쏟아내는 비바람도 낭만으로 변한다. 비루한 알콜에도 술기운이 거하게 오르면 우쿨렐레를 꺼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당연히 다 틀린다) 잭 존슨을 들으면 인생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요즘, 중국과 대만과 미국의 관계는 심상치 않다. 역사는 모든 전쟁을 비웃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중국을 미워하기도, 대만을 미워하기도, 미국을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칭다오나 파인애플 맥주나 잭 존슨을 미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면 지옥에 가야 할 것이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좀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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