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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Oct 01. 2022

피곤한 서울의 아침

수요일마다 서울로 출근을 하게 되니, 피로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번은 다른 일이 있어서 당일치기가 아닌 1박을 하고 목요일 낮 비행기로 내려온 날이 있었다. 서초에 있는 동생네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잠을 설쳤는데, 야속하게도 다섯 시 반에 알람도 없이 잠이 깨어버렸다. 


이왕 서울에서 이른 아침을 보내게 된 것.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곰탕이 떠올랐다. 서울의 아침을 여는 데 곰탕만 한 게 있을까? 나는 하동관 매니아였다. 지금은 수하동이 된 선릉역 근처의 하동관을 좋아했다. 오랜만에 서울에 왔으니 한 그릇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놋쇠 주전자로 부어 주는 깍두기 국물과 산더미처럼 쏟아 넣는 다진 파. 하동관 곰탕은 나의 소울 푸드였다. 곰탕 한 그릇을 털어 넣고 마시는 캔커피의 하드코어함도 사랑했다. 캔커피는 당연히 스타벅스 더블샷 에스프레소 앤 크림이었다. 그 두 가지 조합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하동관과 캔커피. 삼성전자에 다니던 시절, 한 주를 끝내고 주말을 시작하는 토요일 새벽에 기계처럼 실천하던 루틴이었다. 아내는 그때 나의 루틴을 지금도 비웃는다. 참 쓸데없는 걸 목숨 걸고 지킨다면서. 


아무튼 그런 이유로 곰탕을 먹고 싶었다. 문제는 동생네 집에서 선릉까지는 전철을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라는 점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목요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들 틈에 끼어서까지 곰탕을 먹으러 갈 것인가?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가? 나는 곰탕을 좋아하는 이상으로 출근을 싫어했다. 추억이 담긴 장소이긴 하다만, 그 정도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나 싶어 지도 앱을 뒤적여 보았다. 마침 근처에 또 다른 곰탕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유서 깊은 곳이었다. 리뷰를 보니 수하동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좋아. 가 보자. 나는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장군의 마음으로 동생네 집을 나섰다. 


밖에 나와 보니, 그날따라 갑자기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갔다.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곰탕집은 한 건물 전체를 쓰고 있었다. 돈 좀 벌었나 보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층에 자리를 잡았다. 잠깐 고민하다가 곰탕이 아닌 내장탕을 시켜 보았다. 왜 굳이? 하는 마음이 잠깐 나를 붙잡았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주문을 바꾸지 않았다. 


옆 자리에는 금시계를 찬 할아버지와 중년의 남자, 중년의 여자가 술을 마시며 곰탕을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었고, 여자는 웃기지도 않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웃어 주었다. 미세먼지, 내장탕,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 뭔가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선릉역으로 가야 하는가. 하지만 역시 피곤했다. 나는 자리를 지켰다. 


아니나 다를까. 김치에서 겨털이 나왔다. 


카운터에 대고 따질까 하다가. 그냥 김치를 옆으로 치우고 내장탕만 억지로 끝냈다. 화를 내기도 싫을 정도로 피곤했기 때문이다. 묵묵히 계산을 하고 나와 미세먼지가 자욱한 서울의 아침 거리로 들어섰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피곤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괜히 더 그래 보였다. 갑자기 서귀포의 야자수와 새하얀 구름이 그리워졌다. 


입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벅스 캔커피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편의점에 가야 한다. 이왕이면 초코바(모델명은 미스터 빅)도 하나 먹어서 내장탕을 내장 깊숙이 밀어 넣어야겠다. 새로운 결의가 생긴 나는 조금 힘이 나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편의점 두 군데를 들렀는데도 미스터 빅이 없었다. 꼬이기로 작정한 아침이었다. 


마지막 편의점에서, 나는 미스터 빅을 찾기를 포기했다. 그냥 다른 거라도 사자. 하지만 미스터 빅이 없으니 흥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초코바 매대에서 서성거리다, 킷캣 청크(킷캣이랑 똑같은데 더 굵고 두툼한 한 덩어리 초코바)를 집어 들어 계산대로 갔다. 


키가 작고 피부가 검붉은 중년의 아저씨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그분은 나보다도 다섯 배는 피곤해 보였다. 당연하지. 밤샘 근무를 했을 테니. 캔커피와 초코바를 내려놓았더니 아저씨는 우선 입이 찢어지는 하품을 한 번 하였다. 흐아아핳아암 하는 진심 어린 소리와 함께. 그리고 부산 오뎅같은 두툼한 손으로 검붉은 얼굴을 비비며 잠을 쫓았다. 


아저씨는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바코드를 찍고 말없이 손가락으로 액수 표시창을 가리켰다. 그러더니 다른 손을 내밀어 카드를 달라는 시늉을 하였다. 얼떨결에 카드를 주었더니 손님 쪽으로 향해 있던 단말기에 직접 카드를 꽂아 주었다. 띠링하는 소리가 나자 카드를 빼라는 손짓을 하였다.


내가 외국인인 줄 아는구나. 


서울에 살 때 가끔씩 겪던 일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걸음걸이가 이상한가? 아무튼 공공장소에서 외국인으로 오해를 받는 일이 한 번씩 있었다. 한 번은 김포공항에서 일본인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필리핀에서 싱가포르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어쨌든 한국인은 아니라고 확신했나 보다. 대체 왜. 


카드를 단말기에서 뽑았더니, 편의점 아저씨는 그제야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이제는 내 쪽으로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보통은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상대방에게 반전과 무안을 주는 게 내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만큼은 너무도 피곤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나보다도 더 피곤했다. 그런 사나이에게 뭔가 무안을 주고 싶지 않았다. 피곤함과 미세먼지와 겨털이 점철된 아침의 끝을 조금이라도 평화롭게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였다. "캄솨하미다~" 


더할 나위 없이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피곤한 아침이었다. 다행히도 스타벅스 캔커피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똑같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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