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學習)은 엉덩이 오래 붙이기 훈련이 아닙니다.
많은 어른들께서 학습(學習)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공부는 습관이 되어야 잘한다고 하시며 오랫동안 앉아있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고 강조하시죠. 오죽하면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을까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이러한 공부방법이 학생들의 공부 효율을 낮추고 공부를 싫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 왜 이렇게 바뀌는지 오늘날의 학습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것인지 같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배울 학 (學) 익힐 습 (習)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학습의 의미에 대해 잠시 짚고 가겠습니다. 학습(學習)은 배울 학(學)에 익힐 습(習)자를쓰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배워서 익힘' 이라고 나옵니다. 흔히 학습이란 단어는 공부를 위한 습관의 의미로 사용되는데, '매일 한 시간씩 공부하기' '꾸준히 문제집 20장 풀기' '3시간 동안 안 일어나기' 등이 학습 방법으로 거론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학습은 '공부하는 습관'이라기 보다는 '배우고 익힌다' '배워서 익힌다'라는 병렬적 인과 관계에 더 가깝긴합니다. 하지만 흔히 '배움(學)을 위한 습관(習)'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늘은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진짜 엉덩이가 공부를 하는 걸까요?
먼저 부모님과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왜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부터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60여 년 전에 전후 시기를 맞이한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최빈국'이었습니다. 196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도 되지 않았으나 미국은 이미 17,000달러가 넘는 상황이었죠. 모든 것이 사라졌고 문화와 지식의 대변혁이 일어났습니다. 외국 문물이 유입되며 수백 년간 옳다고 여겨지던 이전의 학문들이 새로운 지식들에 의해 도전받게 되고, 생활 패러다임에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한 마디로 '0' 제로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던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수학을 배우고, 과학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기술을 배우는 등 모두가 황무지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신식 지식의 습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절대적이고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습니다.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안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기술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당시 책과 선생님밖에 없었고, 더 오래 앉아서 책을 보고 더 많은 수업을 듣는 것이 곧 새로운 지식의 습득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인터넷 같은 것은 없었죠.) 한 마디로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되던 시기였습니다.
최고의 가치 = 새로운 지식 습득 = 책과 수업 = 오래 앉아있기
즉, 오래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최고의 가치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다.' '삼당오락 - 세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 와 같은 말들이 유행하고 일종의 교육 명언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만해도 어렸을 때 삼당오락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습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이 곧 많은 지식의 습득을 의미했고, 그것은 나의 미래와 부, 우리 가족의 안정, 나라의 부강함과 직결되었습니다. 공부는 경건했고 절박했으며 감동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책상 앞에 앉아 '공부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면서 이를 악물고 몇 시간을 앉아있는 노력과 오기는 바람직한 가치로서 밝은 미래를 담보해주었죠. 그래서 이러한 감동적인 자수성가 공부 스토리를 담은 책들은 여전히 많은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오늘의 학생들은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버스에 타면 핸드폰으로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고, 한 달이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교육 박람회가 열리며, 걸어 다니면서 포털 사이트로 뉴스를 보고, 방학에는 수많은 학습캠프가 청소년들을 기다립니다. 전 인류가 생산한 지식의 90%가 최근 2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지식은 넘쳐흐르고, 이를 전달할 방법과 채널도 책과 선생님을 넘어 핸드폰, 컴퓨터, 이벤트, 수백 개의 TV 채널, 광고지에 이제는 가상현실 기기까지 다양해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어, 누구나 검색 한 번으로 비법 떡볶이 요리사가 되고 멋진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지금의 학생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지식 습득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넘치는 지식과 정보 속에서 나에게 맞고 나에게 필요한 지식의 선별과 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주체적인 습득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들 합니다. 인터넷과 거리에 차고 넘치는 수많은 정보들을 나에게 의미 있고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중요해진 겁니다. 바로 여기서 새롭고 더 근본적인 학습의 개념이 도출됩니다. 아래 명동 사진을 보면서 더 이야기해볼까요?
이런 거리를 우리는 수 없이 지나쳐갑니다. 사람들이 있고 간판이 있고 시끌시끌한 소리가 있고 아름다운 조명이 있는 거리들. 이 거리와 사진을 보고 혹시 무언가 '배운 것'이 있나요? 제가 이 사진을 보여주고 많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것을 보고 무엇을 새로 알게 되거나 느꼈나요?
다양한 대답들이 나옵니다. '어떤 간판은 잘 보이고, 어떤 간판은 잘 안 보이는데 배경이랑 글자 색깔이랑 빛에 따라 달라요.', '저기 빨간 머리 행인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길을 보면 되게 어두울 것 같은데 하늘은 안 어두워요.', '저렇게 가게가 많은데 무슨 장사를 하면 잘될까 생각도 들어요.', '엄청 시끄러울 거 같은데 되게 조용하면 이상할 것 같아요.' 등등. 여러분들께서는 무엇을 새로 알게 되셨거나 느끼셨나요?
배운다는 학(學)의 의미는 '새로운 지식을 얻다' 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으면 배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위와 같은 명동거리에서든, 지하철역에서든, 아이돌 노래를 들을 때든, 편의점에서 우유 진열대를 볼 때든 전혀 관계없이 말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우리는 정보와 지식이 넘쳐흐르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새로 배우고 얻었는가'이지, 어디서 혹은 얼마나 조용하고 진지하게 지식을 얻었는가가 아닙니다. 저는 마트에서 음식을 살 때 원재료 표기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도 새로 배우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무엇을 새로 알게 될까요?
예를 들어, 엘-글루타민산나트륨(향미증진제)가 뭐지? 우리가 보통 말하는 MSG 같은 건가? 하며 핸드폰을 꺼내 쓱 찾아봅니다. 내가 먹을 것이고 비슷한 종류의 제품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교를 하게 됩니다. 찾아보니 한 마디로 미원이나 다시다 등 조미료의 주 재료로써 감칠맛을 내는 거라는 것, 분자식이 이렇고 요즘 MSG가 몸에 좋네 안 좋네 이슈가 많으며 이를 넣지 않은 제품들이 건강식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등... 스마트폰만 척 열면 인터넷에 있는 지식과 정보를 순식간이 찾아볼 수 있으니 마트에 서서 L-글루타민산나트륨 공부를 2~3분 만에 후딱 해버리고 제품을 고릅니다.
배움(學)은 이러한 과정입니다.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아는 것이죠. 반대로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더라도 다 아는 내용을 보고 있다거나 지루해서 내용 파악은 안 하고 글자만 읽고 있다면 새로 알게 된 것이 없기 때문에 배운 것(學)이 없게 됩니다. 책은 읽었으나 공부를 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책을 읽고 '무엇을 새로 배우고 알게 되었느냐' 인 것이죠. 책과 공부는 떼어서 생각해야 더 바람직합니다.
사실 예전에는 책을 보는 것이 배움과 직결되었습니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책 밖에 없었으며 (TV는 바보상자라 불리며 공부의 적으로 생각되던...) 세상에서 접할 수 있는 지식의 양도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적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당시 공부를 했던 어른들께서 '오래 앉아있는 놈이 이기는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시고 이는 매우 당연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온갖 지식과 정보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두루 존재하고 언제 어디서든 지식을 손쉽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 중에 무엇을 새로 알게 되고 느꼈는가가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공부하는 습관'을 말하는 학습(學習)은 그래서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새로운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란, 언제 어디서든 무엇을 새로 알 수 있을지 생각하는 습관
다른 말로,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의미있는 지식을 찾고 발견하고 얻어가는 생각의 습관을 말합니다. 뉴턴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이게 왜 떨어지지?'를 연구했던 것처럼, 수많은 지식과 정보의 세상 속에서 '이건 왜 그렇지? 여기서 난 무엇을 새로 배우고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지적 호기심과 활력을 연습하고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습(學習)'인 것입니다. 이를 알고, 훈련 및 습관화된 학생들은 길을 걸어가다 받은 전단지 한 장에서도 배우고, 공사 중인 도로를 보면서도 배우고, 거리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냄새에서도 무언가를 배웁니다. 일어나 있는 시간 전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진정한 학습의 의미이고, 앞으로는 점점 더 이 새로운 개념의 학습관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친구들은 이러한 생각의 훈련과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렇다면 책과 수업이 중요하지 않게 될까요? 예전처럼 절대적이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책과 수업은 아주 효과적인 학습 방법입니다. 애초에 책과 수업이 '새로운 것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학생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 반강제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책과 강의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리와 몸이 지식의 습득을 거부하게 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배부른데 계속 먹으라고 하면 못 먹죠. 게다가 '꼭 청소하려고 하면 엄마가 하라 그래서 하기 싫어져.' 같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타자에 의한 행동이 반복되면 무조건적인 반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럼 '나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을까?'와 같이 진정한 의미의 주체적 학습 사고 과정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가능하면 모든 상황을 피하고 거부하려 합니다. 공부가 괴롭고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학을 떼는 아이들이 이미 이러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친구들은 어디론가 자발적인 행동의 해소구를 찾게 되는데 많은 경우 게임에 빠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이 계속 힘들고 거부하고 싶으면 어딘가 새로운 세상으로 탈출하고 싶어지죠. 그것이 정말 훌륭하고 재미있고 저렴하게 구현된 곳이 게임 세상입니다. 그래서 게임을 정신없이 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오래 한다고 핀잔을 줄 것이 아니라, 혹시 공부에 대한 종용과 질림 때문에 도피처로 게임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친구들에게는 아무리 작은 것도 좋으니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고 결과를 얻는 기회와 과정을 많이 만들어주어 생활 및 공부 자존감(自存感)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라면을 어떤 종류든 자유롭게 골라 5개 담아보라는 경험마저도 도움이 될 겁니다. (단,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말 자기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야함!)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학습 연습을 해보며 마칠까요? 아래 사진은 한 서점의 실내 모습입니다. 이것을 보고 무엇을 새로 배우고 느낄 수 있을까요? '요새는 서점에서 아예 책을 읽으라고 저렇게 해 놓네. 왜 그럴까?', '세상에 저렇게 큰 나무도 있구나.', '저 정도 조명이 책 읽기 좋은 밝기인가보네. 우리 집은 어떨까?', '천정까지 색이 진해서 그런가 전통 있고 품위 있어 보이네.' 등등 사람에 따라 서로 얻어가는 것이 다르고 떠오르는 생각이 다를 겁니다. 그 과정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지, 나는 어떤 것에 관심이 가고 무엇을 새로 배웠을 때 즐거운지 깨닫고 머리를 써보는 것이 바로 학습 연습입니다. 자, 해볼까요? 무엇을 배우셨나요? (배운 것을 댓글로도 적어주시면 의미있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 단 '뭔가 배우고 알아내야지!' 라고 진지·경건·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능하면 재밌고 자연스럽고 창의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힘든 것은 습관이 되기 어려우나 즐기면 저절로 습관이 됩니다. 배움(學)도 이렇게 습관(習)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것이 '학습(學習)'입니다. 이를 갖춘 후 오래 앉아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다면 공부의 효율과 시간을 모두 잡게 될 겁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학습(學習)을 위해 필요한 중요 과목과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내용이 미리 궁금하시거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원하시면 아래 브런치북도 참고해주세요.
위 글은 제 2회 브런치북 대상작 '공부 자존감' 책의 일부와 미처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말씀드린 학습(學習)의 진정한 의미와 같이 앞으로의 공부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빼곡히 적어냈습니다. 학생들에게 추천함과 동시에 부모님께서도 읽어 보시면 자녀의 공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