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맨과 편지빌런

by 중앙동 물방개

주말 자유수영을 할 때의 일이다. 나는 ‘걷는 레인’의 바로 옆 레인에서 수영하고 있었다. 50미터를 돌고 숨을 고르기 위해 몸을 일으켰을 때 수영장을 울리는 큰 소리를 들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수영을 재개하려는데 고함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물 밖에 서 있는 남성이 마주한 안전요원에게 소리친 것이다. 옆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걷는 레인에서 물을 너무 심하게 튀기면서 발차기 하니까 (여긴 걷는 레인이라) 다른 곳에 가서 하라고 안내요원이 말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아까 수영하면서 옆 레인은 분명 걷는 레인인데 왜 이렇게 물이 심하게 튀는 건지 이상했다. 보통은 ‘걷는 레인에서 수영하면 안 되는 구나.’ 하고 다른 레인으로 가지 않나. 고성으로 안내요원에게 화낼 이유가 뭐가 있을까.


하도 역정을 내기에 들어보니 "그렇다면 좋게 얘기하면 되지 왜 그렇게 말하냐"고 한다. 안내요원이 처음부터 윽박지르거나 화낼 리 없다. 지금도 안내요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편이다. 저 사람은 지금 ‘감히’ 안내요원 따위가 내게 상냥하거나 저자세로 '부탁'하지 않아서 불쾌한 것이다. 수영장은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할 만큼 그 사람(이하 '감히맨'이라고 하겠다)의 신경질적인 고성이 울려 퍼지고 주말의 고요한 평화는 깨져 버렸다. 물속에서 여유를 즐기려고 수영장을 찾았던 이들이 감히맨에게 단체 피해 보상을 요구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듯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목소리가 큰 안내요원이 한 명 더 동원되면서 2:1로 감히맨이 퇴장하며 막을 내리..는 줄 알았으나 그는 쉬이 나가지 못하고 다시 안내요원으로 가다 말다 가다 말다를 반복했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아니 터키 아이스크림 주인이야 뭐야. 감히맨은 많은 이목을 끈 에피소드의 결론이 자신의 퇴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국인 분노 표현의 3대 접두사 ‘아니 근데 진짜’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번 이야기는 탈의실에서 들었다. 상급반에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데 뒤로 가지 않고 앞자리를 고수하는 회원이 있다고 한다. 왜 문제가 되냐면, 수영장 레인이 고속도로라고 치면 최저속도 이상 달려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과속도 문제지만 너무 느려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 회원은 속도가 느려 뒷사람에게 따라 잡히면 알아서 뒤로 가야 되는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체구간을 만들고 사람들은 수영할 곳을 걷게 되면서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다. 못하는 건 죄가 아니나 못하면서 계속 앞자리를 고수하는 건 피해를 준다. 이를 전해들은 강사가 회원에게 지도했다가 다음날 수영센터에 항의 편지가 왔다고 한다. 그 회원이 손 편지로 센터 쪽에 항의한 거다. 그러고 나니 선생님도 차라리 회원들이 얘기하라고 하고 내가 주의를 줘도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직접 말한 회원도 있었지만, 선생님도 못 막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몇몇 회원이 손 편지 빌런의 뒤를 고수하면서 다른 사람의 피해를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이 두 빌런(개인적으로 빌런이란 단어는 의미가 희석되는 것 같아 선호하지 않는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그들은 자기 객관화가 안 된다. 자신이 무얼 잘못하는지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둘째,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있어 지적하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대신 도리어 지적하는 사람의 태도를 꼬투리 삼아 공격한다. 나에 관한 긍정적인 발언이 아니면 그 외에는 모두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를 공격할 때 내가 공격해도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판단한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다.

사실 이런 사람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운 좋게 나의 반에 그런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설령 지도한다고 해도 이미 40년 넘게 지층처럼 쌓여서 형성된 성격과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약간의 기대도 금물이다. 딱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사유했으면 한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사유하지 않는 건 폭력이다. 사유할 필요가 없었던 건 권력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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