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먹고 싶어해

by 중앙동 물방개

수영 후엔 왜 육개장 사발면이 당기는 걸까. 찾아보니 그런 사람이 나 뿐은 아닌지 수영 후 먹는 음식, 일명 스윔푸드swim food로 육개장 사발면을 꼽는 이가 많다.


수업을 시작하고 시계를 보면 꼭 35분 정도가 지나있다. 왜 아직 15분이나 남았는가. 나는 공복에 수영하기 때문에 이 시간대쯤 되면 약간의 허기와 더불어 보상심리가 들러붙는다. 힘들게 운동했으니 맛있는 걸 먹어서 기운을 좀 북돋아야겠어. 운동을 했으니 그래도 돼. 그 심리를 가만히 따라가 보면 익숙하고 자극적인 맛의 집합체로 가장 먼저 컵라면이 떠오르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한낮의 물놀이 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영복을 입고 어깨엔 비치타올을 두른 채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한기를 느끼면서 따뜻한 육개장 사발면을 먹은 추억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육개장 사발면은 1982년에 출시된 후로 40년 동안 여러 버전이 나왔는데, 좀 더 큰 컵라면이나 봉지라면은 그 맛이 살지 않는다. 양이 적다 느끼더라도 꼭 오리지널 컵라면이어야만 한다. 이 육개장 컵라면의 열량은 375kcal니 사실 50분 수영하고 먹는다면 칼로리는 잊기를(그리고 대국민 건강기능진흥법에 따라 면이 익는 동안 삼각김밥도 먹어줘야 하지 않나요?).


다른 라면에 비해 면발이 가늘어 라면스프를 맞춤옷처럼 딱 흡수한다. 살짝 이른가 싶을 때 뚜껑을 열고 먹으면 아작아작한 식감 또한 별미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휘젓기 전에 스프가 뭉쳐져 있는 부분을 살짝 헤칠 때 손놀림이 가장 빨라진다. 면발 위에 다소곳하게 놓여있는 동그랗고 노란 계란은 보는 것만으로 설렌다. 요새 통 입맛이 없거나 라면을 맛있게 먹고 싶다면 수영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목욕 후 마시는 단지 바나나 우유처럼 수영 후 육개장 사발면이 주는 쾌감은 다른 제품이 대체할 수 없다. 나중에 수영장 센터에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 사발면을 늘 제일 앞에 비치해둘 것이다.


샤워를 빨리 마치거나 여유가 있는 경우, 아침 수영 후 근처 맥도날드에 간다. 배달이 아닌 맥도날드 매장에서 맥모닝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 가는 맥도날드는 오전에 손님이 거의 없고 배달기사들만이 제품을 찾으러 매장에 들어온다. 베이컨을 뺀 토마토 에그맥머핀과 콜슬로우, 따뜻한 드립커피가 나만의 스윔푸드 조합인데 콜슬로우를 한 스푼 퍼서 머핀에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 평일 오전의 어느 맑은 날 직원 누군가의 취향일 법한 최신가요가 매장에 흐르고 내 테이블 위로 떨어진 햇살이 수영가방을 부드럽게 감싼다. 맥모닝이 기막히게 맛있어서가 아니라 이 시간대에만 느낄 수 있는 여유와 편안함이 나를 이곳으로 부른다.


나는 잡곡밥과 채소 반찬의 한식을 주로 먹는데 가끔 사발면 같은 음식이 당길 때도 있다. 실은 수영 초반에는 늘 그런 게 생각났다. 다만 음식을 엄격하게 제한하진 않는다. 이를테면 정신이 원하는 음식과 몸이 원하는 음식이 있고 조금씩 다른데, 어느 한쪽만을 내게 먹이다 보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밀가루를 제한하다 건강, 뾰루지 없는 피부 등을 얻었지만 삶의 아주 중대한 기쁨을 잃은 것처럼) 수영도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하기에, 먹는 행위도 내 행복에 일조해야 한다. 항상 몸에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기 보단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줄이거나 적게 먹는 방향을 선택했다.


어제 옆에서 수영하는 회원의 수모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끝나고 뭐먹지" 분명 수영인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만들었을 거다. 수모를 본 회원들이 메뉴를 추천해줄 수 있으니 커뮤니케이션 스킬 증대에도 좋지 아니한가. 수영하는 내내 오늘 뭐먹지 고민하면 한 바퀴 더 돌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수영 후 아침 햇살 아래 서 있으면 오늘도 벌써 하나 해냈다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좋은 음식을 먹고 천천히 늙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한 채 후루룩 먹는 사발면의 낭만도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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