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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Oct 23. 2023

들길 따라서

무서운 소동

들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을

날아서 가고파


                 양 희은의 <들길 따라서> 중에서


학창 시절을 들길 따라 오가며 보낸 시골처녀가 도시사람이 된 지 40년째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세월은 잘도 흘러 가을 단풍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늦게 남편회사를 새로 지어 옮기는 바람에  전철 골드라인  끝자락의 양촌역까지  종종 다닌다.

퇴근 무렵 양촌역에 내리기 10분쯤 전에 다 와간다고 하면 이이가 데리러 나온다. 나름대로 

데이트 기분도 들고 그래서 기분 좋은 만남이라 여기며 지내고 있다. 왜냐하면 새로 지은 그곳에 작게 보금자리도 마련해서 집을 떠나와 지내는 것도 평소와 달라서 즐길만하기 때문이다.


  도착하면 건물입구에 심은 메리골드의 마른 꽃잎도 따주고,

진하게 빨간 맨드라미도 잘 있는지 보고,  담장에서

바람과 비와 함께 서걱거리거나 하늘거리는 옥수수와 코스모스의  키 큰 뽐냄도 보면서  집에서 가지고 나온 바구니에 청양고추. 가지. 루꼴라. 상추. 아욱. 쑥. 냉이. 개망초. 부추  이런 걸 따서 나물도 하고 된장국도 끓이고 해서 현장 음식을 만들어 먹는 맛도 재미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똑같은 놀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아침까지 양촌에 있다가 걸어서 양촌역을 찾아가기로 했다. 열매 맺은 도둑놈가시도 있고,

맘껏 핀 들국화도 좋아서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양촌역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만 골똘해 있었다. 어제 비로 길바닥에 흥건한 물도 피하고, 갈대가 꽃을 피워 햇살아래 늘대는 것도 보고, 아무도 손대지 않아 잘 자라고 있는 고들빼기도 보여 뽑고 싶은 충동도 생겼다.  2층 건물이 여러 동 길게 보이길래 저게 양촌역이려니 하며 안심하고 걷다 보니까 강아지풀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거참 이쁘네 하면서 나도 같이 흔들흔들 걷고 있을 때였다. 이게 뭐야 아! ~~~~

까만 듯  한 물체가 동그란 듯도 한 것이 이건 평소 가장 싫어하기도 하고 두려워하는 ㅂ자 그것이었다.  악!!!! 고함치는 소리에 트럭에서 내리던 어른 두 분이  쳐다봤다.  무서워요! ㅂ인가 봐요~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뭘로 쫓아보네라고 한다. 그리고는 시나브로 당신네 일터로  떠난다. 하는  수 없이 벼꼭지가 남아있는 논  가운데로 피해서 가려니 계곡이 깊어 빠져나갈 길이 없다.  마침 길가에서 젊은이가 운전석에 앉아있길래 도움을 청했다. 젊은이는 ㅂ이 저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줬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동그랗게 돌아서 다시 양촌역을 향하는데 모골은 아직 송연했다.  자박자박 양촌역이 바로 저기인데 하고 서둘러 걷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는 처음 본 ㅂ보다 훨씬 큰 그것이 고불고불 큰길에  있었다. 악악!!

악다구니를 쓰며 젊은 청년이 회사 관련 업무를 차 안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혹 양촌역에 데려다줄 수는 없겠냐고  부탁을 해봤다. 자리가 없어서 어려울 것 같다고 정중히 거절을 한다. 그 이는 본인 업무에 충실하는 중인데 주책스런 나의 소동을 다 책임질 순 없겠다 싶었다.


 포기하고 득달같이 남편에게 전화했다. 전화에 대고  계속 으르렁거리는 아내에게 ㅂ은 그냥 도망가는데 왜 그리 무서워하냐며 곧 데리러 간다고 했다. 그사이  무섭지 않기 위해 마을 주택 앞 그늘에서  기다렸다. 햇살은 중천에서 나를 놀리는 듯 방글거렸다.


 들길과 햇살사이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승용차를 보자니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보여 손을 들었더니

남편 대신으로 아들이 나타났다.  뭐 그리 무섭냐며  우리 엄마가 이렇게 요란한 사람인 걸 처음 알았다고  그런다.  바쁜 사람 불러냈으니 커피값은 엄마가 내라고 했다.  손 좀 잡아주라고 했더니 힘껏 잡아줬다. 그래도 내 손엔 두려움이 느껴졌는지 엄마도 힘주세요 그런다. 정신 차려 주먹을 쥐니까 그때야 마음이 돌아왔다.


 전철 한 대를 그냥 보내고 대합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콩당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한~~~ 시간 오는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카레이터를 타고 올라왔을 때, 시민들이 공용으로 타는 자전거 정류장에서 까만  열쇠 묶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등골이 오싹했다.  ㅂ의 잔상은 내게 아직도였다.


좋으려고 갔다가 몹시도 고달프고 소란스러웠던

아침나절의  이야기에 대하여,

도둑놈가시와 들국화와  갈대와 강아지풀이  날 보고 '허우대는 커가지고 별일이야.' 하고 해님과 함께 히죽거리진 않았을하고, 코스모스에게라도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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