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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Jan 30. 2020

크루즈 세계일주, 다시 쓴 수영의 역사

위에서 부터 셀러브리티, 겐팅드림호, 풀만투르, msc의 수영장 모습이다.

위에서 부터 셀러브리티, 겐팅드림호, 풀만투르, msc의 수영장 모습이다.


내 수영의 역사에 대해서 적어보자면 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양시 호계동 경남아파트에 살던 시절, 나를 벽산스포츠 유치원에 입학시키건 엄마가 내게 제공한 모든 사교육을 통틀어 가장 잘 한 일이었다. 왜냐면 수영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질은 천지차이가 나니까. 만약 내가 수영을 배우지 못해 엄마 아빠와 놀러간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그들이 한 눈 판사이 허우적거리다 물을 무서워 하게 됐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50퍼센트는 더 따분했을거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의견일 뿐이다. 구구단을 외우기도 전부터 수영을 배운다는 건 수영을 인생의 지표로 삼겠다는 뜻은 아닐까 나는 종종 생각했다. 그 당시는 내가 살아 온 중 가장 날씬한 때 였는데 수영복을 입어도 배가 볼록 튀어나오지 않고 매끈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다. 초록색 줄이 있는 남색 수영복이었는데 메이커는 아레나나 아레나가 이니거나 아레나 비슷한 거였을 거다. 그 수영복을 입고 노란 스펀지 판떼기를 붙잡으며 숨을 내쉬고 뱉고를 배웠다. 


"움파움파"

                                                                                      

msc 실내 수영장. 날씨가 추우면 실내에서 수영을 한다.

입을 오므렸다 벌렸다 반복하면서 내는 움파움파 소리는 어쩐지 좀 우스운 구석이 있었다. 원시부족들이 몰려와 창을 바닥에 내려치며 움파움파 외칠거 같기도 하고, 어느 개그맨이 움파라파파 움파파 라고 말할 것 같기도 하고. 물 속에서 숨을 내쉬고 뱉는 그 말이 웃기고 귀여워서인지 나는 처음부터 수영을 좋아했다. 수영을 배운다는 건 단지 물 속에서 호흡 하는 법을 배우고 헤엄치는 것 을 배우는 것 뿐 아니라, 숨 쉬기 어려운 인생의 무중력 지대를 거칠 때 숨을 쉬고 앞으로 가는 힘을 준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속으로 '움파움파' 천천히 반복하면 청량한 물빛이 손끝으로 타고 들어와 마음이 평안해지곤 했으니. 


인도에서 카페 두레를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 해 여름은 유독 더웠다. 나와 j는 수영에 미쳤거나, 수영을 못하고 죽은 귀신이 붙었거나, 수영에 원한이 있는 사람처럼 수영을 해댔다. 도장깨기라도 하듯 전국의 수영장을 순례했다. 이태원의 수영장은 몸 좋은 와국인들이 많더라. 신림동의 수영장은 비싸지만 천원 만 더 내면 찜질방을 이용할 수 도 있더라. 봉천동의 수영장은 여름에는 야간 자유 수영을 제공한다더라. 교육 연수원 수영장은 자유 수영이 매 시간 있더라. 수영장 가이드북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서울의 수영장 데이터베이스를 쌓았다. 생각해보면 라다크에서 보내던 3년 간의 여름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한낮에 몸이 타들어갈듯 더워도 그늘에 서면 서늘한 그 라닥의 여름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우린 더 수영에 집착했던 것 같다. 안하던 짓을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뜨거운 여름밤 수영이 끝나고 나온 우리의 몸의 서늘한 기운이, 머리카락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가 좋아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술을 마셨고 평소보다 10배는 빨리 취했지만 평소만큼 술을 마셨다. 그러며 오늘 흰 수영모가 잘생겼느니 검정 수영모가 내 스타일이니 실없는 소리를 해대며 낄낄댔다. 그리고 거짓말처럽 그 여름 이후 수영을 하지 않았다. 늘 수영장을 가고 싶었지만 늘 마음뿐이었다. 아니 사실 회사를 다니며 수영을 배우기도 했고 여행을 가서 수영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만큼 즐길 수 없었다고 정정하는 게 더 정확할테다. 

                                                                     

셀러브리티크루즈의 해 질 무렵.

크루즈 여행에서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비교할 것 없이 수영이었다. 크루즈에서는 너무 늦은 밤과 새벽만 아니면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수영을 할수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영의 시간은 해가 뜨거운 한 낮, 해가 기웃기웃 저무는 저녁, 어둠 속에서 영롱한 달빛이 빛나는 한 밤중이었다. 한 낮의 태양은 뜨겁고 하늘은 거짓 없이 파랬다. 날이 좋은 날 실외의 수영장은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언어가 뒤엉켜 시끌벅적했다. 귀마개를 끼고 하늘을 향해 배를 까고 귀를 물에 온전히 잠기게 하면 시끌벅적한 소음이 지워지고 고요만이 남는다. 소리가 차단되자 자연스레 주변에 바글거리는 사람들도 사라진다. 물 위에 뜬 채로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만이 보이는 감각은 마치 망망대해의 조금씩 움직이는 외딴 섬이 된 기분이다. 내가 만날 수 있는 친구는 단 둘. 구름이 서서히 움직이는 하늘과 고요히 물결치는 바다뿐. 수영장은 해수를 이용하니 바다와 다름없기에. 평생 이 두 친구하고만 살라고 하면 답답해 미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느림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로맨틱으로 따지자면 제일은 해 질녘 수영이다.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는 아주 크고 또렷한 일몰이 때로는 붉게 때로는 노랗게 때로는 보라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장면을 보려고 얼굴을 빼고 수영을 했다. 나는 해질 녘 수영을 하며 내가 한 때 가졌었지만 이제는 갖고 있지 못하는 것들, 한 때 반짝였지만 이제는 더이상 반짝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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