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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Aug 15. 2020

크루즈 세계일주, 유럽 맥주 브루어리 투어 2탄


하룻밤을 정박하는 로테르담에서는 시간이 넉넉했다. 구글 지도를 둘러보고 꽤나 알찬 계획을 짰다. 가벼운 아점을 먹고 미술관을 들렀다 맥주 브루어리에 가고, 마켓홀 시장과 그 주변을 둘러보고 크루즈에서 저녁을 먹은 뒤 항구 근처에 있는 브루어리에서 하루를 마감하기로 한 계획이었다. 크루즈를 타고 여행한다는 건 일종의 마법 같은 일이다. 매번 다른 항구에서 내려 매번 다른 공기와 분위기의 땅을 밟고 냄새를 맡는 순간 늘 새롭게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햇빛도 좋고 기분도 좋아 룰루랄라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가서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곳을 둘러봤다. 유럽 어디를 가도 그래피티는 일상적인 장면이지만 건물을 메운 그림들이,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 들이, 이리저리 눈에 띄는 디자인 공방이, 작은 점포들이 상당히 힙했다.

그 거리에 내가 속해있는 것 만으로도 나 역시 힙해진 느낌이어서 힙에 취해 왠지 힙한 느낌의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이네켄 생맥주를 마셨다. 자주 먹어 본 하이네켄 맥주이지만 하이네켄의 본고장에서 먹는 그 맛은 평소보다 더 청량하고 신선하고 고소하다.

다음으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과 나란히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곳인 보에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을 갔다. 렘브란트부터 몬드리안까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이 곳에서 본 전시는 안보고 내부 인테리어와 무료로 볼 수 있는 상설 전시만을 보았다. 카페가 있는 미술관 로비에는 천장에 주렁주렁 옷걸이 들이 달려 있는데, 옷 보관함이자 하나의 작품이다. co westerik이라는 작가의 작품은 인간이 갖는 여러가지 종류의 상처를 귀여운 그림 속에 녹아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자, 이제 관광 비스무리한 걸 조금 했으니 브루어리를 가야하지 않겠는가? 어디를 가볼까나~~내가 선택한 곳은 로테르담 도심 한 가운데, 시청 바로 뒤에 있는 THOMS Stadsbrouwerij 톰스 브루어리. 2019년 5월 유럽의 날씨는 이상기후라고 느껴질 정도로 추웠는데 이 날의 해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웠다. 이 브루어리는 매일 금요일 1,000리터의 맥주를 양조하는 양조펍으로 맥주 양조 탱크는 실내 테이블 바로 옆에 있고 맥주는 저온 살균되지 않고 여과되지 않아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에는 자신의 테이블에서 직접 수제 맥주를 따라마실 수 있는 4개의 셀프 탭 테이블이 있다. 셀프 탭 테이블은 화, 수, 일에는 6명 이상 목, 금, 토요일에 10명 이상 예약할 수 있는데 1리터 단위로 가격을 매겨 잔으로 마시는 것보다는 조금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직접 수제맥주를 따를 수 있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니 단체 방문을 해도 좋을 곳이다. 유난히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태양을 닮은 색의 맥주를 마셨다. 테이스팅 코스는 메뉴판에서 3개를 골라 시킬 수 있는데 난 위트에일을 빼고 페일 에일, IPA, 필스너 3종을 시켰다. 화려한 기교 없이 깔끔하고 단정한 맛이었고 청량한 맥주였다. 내 좌석은 유난히도 해가 비추는 자리였는데 햇살 아래서 오늘의 해를 가장 닮은 맥주가 무엇인지 비교하며 먹는 것도 큰 재미였다.

가장 먼저 느꼈던 로테르담의 인상이 '힙'이었다면 그 다음은 너무 '뉴', 새 거라는 것이었다. 로테르담의 모든 건물이 계획된 것처럼 구획되어있고 과감한 시도가 많고 새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 도시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철저히 파괴된 후 다시 재건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도시에서 절대 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건축물이 참으로 많았다. 연필 모양의 펜슬하우스와 큐브 모양의 큐브하우스가 그 대표적인 건물들이다. 독특하고 멋있었지만 건축에 문외한인 관계로 슬쩍 훑어봤을 뿐이다. 바로 그 옆 온갖 음식을 파는 마켓홀에서 네덜란드 대표 음식이라는 삼각뿔 모양에 감자튀김과 소스를 듬뿍 담아주는 스낵을 먹고 다시 크루즈로 돌아갔다.여행비 절약을 위해 크루즈에서 정찬 코스요리로 배불리 식사를 한 뒤에는 또 10분 거리의 KAAPSE BROUWERS. 캅세 브루어리로 향했다.                                                                                                                 

누군가 네덜란드 여행 계획이 있다면 꼭 제발 이곳에 가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하고 싶다. 아니 이 곳은 진짜 미쳤다. 너무 좋아. 수 십개의 탭과 눈 돌아가는 귀여운 라벨의 맥주가 수 천 개 쌓여있는 보틀샵은 맥덕의 심장을 곤두박질 치게 하는 건 기본이고 분위기도 미쳤다. 낮에는 야외 강변에서 술을 마실 수 있고 밤에는 실내에서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혼자 라는 사실이 너무도 아쉬울 정도로 힙하고 흥겨워 내 마음에 쏙 든 공간이었다. 컨테이너 박스에 만든 무심한 분위기와 30개 가량의 신선한 맥주 탭, 한입 먹고 나면 매번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는 맥주, 이제는 기억도 안나지만 내 어깨를 흔들게하고 턱을 괴고 바라보게 만들었던 재즈 음악과 밴드. 크루즈 여행을 하며 참으로 많은 곳을 바쁘게 다녔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빨리 행복해진 적은 없었다. IPA와 호밀 스타우트 두 잔을 마셨는데 구운 호밀 빵을 먹는 듯 구수하면서 달콤하고 진득진득하니 진한 맛이 나던 호밀 스타우트가 이 날 마셨던 모든 맥주 중에 으뜸이었다. 보틀샵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캔맥주를 사고 에코백까지 구매하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크루즈로 돌렸다. 방에 돌아와서 커피맛이 나는 IPA를 '딸칵' 따서 마시는데 안어울릴 것 같던 커피와 시트러스하고 홉이 강한 IPA가 빚어내는 맛이 어찌나 조화롭던지... 연신 맛있다를 외치고 '아무래도 로테르담은 이곳을 오기 위해 왔구나, 아니 사실 이 유럽 맥주 투어는 이 곳을 발견하기 위해 왔구나. 아니 어쩌면 내 크루즈 여행은 여기에 오기 위해 시작되었구나' 하는 오바섞인 감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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