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가 결혼했다(4)
"결혼은 무조건 반반이야"라며 헤어져도 타격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부부가 많아진 것 같아요. 부부의 세계가 확실히 바뀌었나봅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만나 보라색이 되는 것보다는 '빨파'로 사는 것. 그게 맞을지도 몰라요. 서로의 돈과 라이프스타일을 섞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저희는 보라색입니다. 무엇이든 같이 합니다. 한 명이 주제(what)를 정하면 다른 한 명은 방법(how)을 정합니다. 이상적인 목표를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끌어내고 있어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볼 때도 있지만 애써 웃어봅니다. 다 큰 어른이 된 것처럼 꼬여버린 대화를 풀 줄 알게 되고, 욕심 많은 의사소통 방식이 점점 유연해지는 기분이 드니까요. 꼬맹이부부는 서로의 표정과 말투를 살피며 뒤로 물러설 줄도 알게 됐습니다.
당신은 훌륭하다는 마음을 품고 공동의 목표와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최근 '30일 정리 챌린지'를 시작했어요. 귀찮게 느껴지는 집안일을 달력에 적어 매일 한 가지씩 도장 깨듯 정리합니다. 오늘은 신발장을 정리하고 내일은 화장실 물 때를 닦습니다. 챌린지를 시작하니 배우자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버리는 걸 잘하지만 배우자는 물건에 맞는 수납공간을 잘 찾아요. 그래서 서로 잘하는 걸 하다 보면 내일 할 일을 오늘 끝내기도 합니다. 그가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고 서운해 할 수 없어요. 제가 못하는 걸 배우자가 다 하니까요. 작은 시스템을 통해 서툰 결혼생활을 능히 해보려 합니다.
"우리 이번 주 할 일은 일주일 식단표 지키기야" 외식 비용을 줄이기 위한 부부의 과제가 등장합니다. 개인주의자였던 우리가 조별과제 같은 걸 하고 있네요. 결혼 준비부터 지금까지 절대 미룰 수 없는 조별과제의 연속입니다. 제가 미루면 배우자가 하고, 배우자가 미루면 제가 하더라구요. 결국 미루면 서로 득이 될 게 없는 구조입니다. 공동 가사에 균등한 책임감을 갖고 하루를 알차게 보냅니다.
꼬맹이부부의 과제는 나름 생산적입니다. 혼자라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실현되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공동의 자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몽상가였던 저희는 소비의 범주가 꽤 넓었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자산 배분과 투자 전략에 대해 논하고 있어요. 오늘 더욱 이성적인 사람이 상대방의 소비욕구를 잠재우고 조금 궁상맞게도 살아보고 있습니다. 서로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돈은 어딘가로 새고 있었겠지요.
배우자가 설거지를 하고 난 뒤 야무지게 고무장갑을 뒤집어놓은 모습을 보면서 결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를 보며 많이 배웁니다. 함께하는 일상들이 켜켜이 쌓여 그토록 바라던 성숙한 인간으로 가는 작은 걸음을 떼는 게 아닐까요. 하루 종일 그가 없는 날에도 게을리 보내기보단 미래를 위한 과제를 계획해봅니다. 배우자에게서 오는 삶의 동기는 생각보다 대단한 것 같아요. 혼자가 좋은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네요.
결혼을 해보니 자본주의 세계에 굴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꽤 충격이었어요. 보편적인 삶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때가 온 거죠. 그래서 나를 위한 삶만 생각했던 비혼주의자들이 배우자와의 여유 있는 삶을 꿈꾸게 되면서 삶의 기준을 조금씩 조정하고 있어요. “우리답게 살 순 없을까?”란 고민이 많아졌어요.
세상의 기준에 완벽하게 맞출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신혼집에 들어오면서 인기 많은 장식장을 구매했는데요. 물건을 채울수록 볼품 없어지더라구요. 큰돈을 들이진 않았지만 형편에 비하면 과소비였어요. 우리에게 맞지 않았던 거죠. "더도 덜도 말고 딱 우리에게 맞게 살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해요. 이를테면, 경제적 자유말고, '경제적 작은 자유'는 어떨까 상상해보곤 해요.
인생의 옵션이 되는 것엔 돈을 아끼고 필요한 것만 적당히 쓰는 삶을 추구하는 삶은 어떨지요. 남들이 가진 것을 모두 탐내기 보다는 오늘의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부터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행복은 익숙치 않는 가계부를 작성하고, 채소를 즐기지 않는 배우자를 위해 건강한 식단을 만들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봅니다. 당신이기에 모두 가능한 것 같네요.
우리답게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