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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덤리 Sep 28. 2022

배우자 듣기 능력 평가

비혼주의자가 결혼했다(5)


Can you hear me?


"내가 그래서 오늘 이 상품을 봤는데, 다루는 게 편하고....가볍고………꺄르르....근데...내 말 듣고 있어?"


결혼을 하고 나니 들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살 때는 듣는 의지라곤 없었는데요. 이제는 듣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꾸준히 듣는 게 참 쉽지가 않아요.


저는 잘 듣지 않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주도적으로 말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생각이 많아서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저만의 생각으로 뇌가 들어차요. 그런 제가 그의 말을 꾸준히 들으려 하니 버거웠어요.  들려준 말을 쉽게 잊기 때문에 그가 서운해하기도 해요. 관계에 서툰 나를 이해해달라고 서글퍼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 들을 수 있는 걸까?


당장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름의 방법이 있다면, 기가 막힌 리액션은 못하더라도 그의 말 덩어리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또한 배우자의 말을 듣지 못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해요. 그냥 지나칠 만한 이야기를 포착해서 기가 막힌 통찰력을 보여주거든요. 가끔 그가 기이해요.


그를 만난 건 행운이에요. 아무리 잘 들어도 상대방의 의도와 맥락을 바로 읽지 못하는 저를 이해해주니까요. 시간이 필요한 저를 참고 기다려주는 사람입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건, 평생 해결할 수 없다.


제 친구도 비혼주의자입니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는 점이에요. 근데 잘 생각해보면, 내 몸의 건사를 살피는 건 평생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같아요. 막상 결혼해보니 생활이 크게 변하지 않더라고요. 결국 나를 보살피는 건 온전히 제 몫입니다. 배우자도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 거죠. 그런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는 건 괜찮다고 말해봅니다.


각자의 몸을 보살피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쉬는 날 그를 떼어놓고 노는 건 상상하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그에게 달린 일과 물건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게끔 둡니다. 아내로서 내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안될 일을 억지로 강요하는 건 관계의 유연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더라고요. 다만 그가 좋아하는 건 건강하게 계발할 수 있게끔 해요. 각자를 보살피며 독립성이란 걸 추구해보고 있어요.


“내가 숫자에 더 밝으니까, 자산 관리는 나에게 맡기도록 해 “


이런 대화는 일방적인 소통이기에 최대한 피합니다. 서로를 들어야 할 이유가 사라져요. 어차피 한쪽이 다 할 거라는데 서로 듣고 말할 이유가 사라지는 거니까요. 그러니 제가 한 영역에 능숙하다 한들, 둘의 의견이 반영된 것보다는 뛰어나지 않더라고요.


오늘도 그가 훌륭한 하루를 보내길 바라며 잠시 헤어집니다.




“결혼하면 뭐가 좋아?”


지인들이 묻습니다. “많이 배운다”라고 말해요. 배움에 목마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정말 많이 배워요. 제가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도 새로운 배움이었으니까요.


본받을 만한 배우자를 만나고 싶던 어린 나의 꿈이 실현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삶에 지쳐 비혼주의자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반짝반짝한 결혼생활을 꿈꿨으니까요. 지금 그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 활짝 웃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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