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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죽음을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

마지막 글: 지금 여기서 사랑하자

by 용PD

아버지가 가신 후 여러 달이 지났다. 아버지가 계시던 공간과 감정의 여백은 시간이 흘러가며 일상의 잔재로 메워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픈 것은 살아계실 때 아버지지께서 가보고 싶다는 곳을 가지 못한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먼 나라로의 여행이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아버지와 가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송도 센트럴 파크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텔레비전에서 본 그 넓은 공원과 호수가 참 좋아 보인다고, 우리나라에 저런 곳이 있느냐고 신기해하셨다. 그때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마침 손자가 송도 근처의 학교에 다녔기에, 기왕이면 손자와 다 함께 만나는 일정을 정해 다녀오겠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학기가 끝날 즈음, 기숙사의 퇴소 시기에 맞추어 3대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괜찮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학기에 안 되면 내년에, 아니면 그다음 해에 모시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아버지와의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여행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아버지와 다니면서 아버지의 생각을 듣고, 내 마음을 전하면서, 어릴 적 이후 멀어진 아버지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였다. 일상의 바쁨 속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들,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 부모와 자식만이 채워줄 수 있는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송도 센트럴 파크로의 여행은 아무 때나 떠날 수 있었는데, 그 출발을 미룬 것이 무척 아쉬웠다.


사실 아버지는 어디를 가고 싶으신 것보다는 우리가 아버지의 계신 곳에 자주 오기를 바라셨다. 아버지가 평소 자식과 함께 있고 싶은 곳은 다른 어디가 아니라 바로 그 시골집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상의 일, 선영을 관리하고, 농사짓는 일을 자식과 함께 하고 싶으셨다. 그때는 항상 바쁘고, 다른 일이 있었다. 왜 항상 다음에, 나중에라고 생각했을까.


살아계실 때 좋은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 뵐 때도 아버지는 항상 곁에 계신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연례행사처럼 식순을 채우는 데 그쳤던 것 같다. 아버지의 일상이 어떤지, 무엇을 생각하며 지내시는지, 건강은 어떤지 진심으로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안녕만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그러기에 살아 계실 때 잘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남들과 똑같은 후회를 나도 하는구나.


이제 와서 깨닫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시작이 태어나는 것이라면, 삶의 끝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언젠가 만날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언젠가는 현생의 모든 것을 두고 이승을 떠나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천년만년 살지 못하기에, 우리는 끝을 염두에 두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


아버지와의 이별로 나는 오늘의 중요함을 다시 깨달았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경험과 즐거운 기억, 사랑과 교감의 순간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 아버지와 못다 간 여행이 그토록 후회되는 이유는, 그 시간들이 돌이킬 수 없는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법, 그것은 결국 오늘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일이 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면, 오늘 할 수 있는 사랑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아버지께 드리지 못한 여행을 대신해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며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마지막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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