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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인숙 Jun 29. 2016

발리 여인을 사랑한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블랑코

안토니오 블랑코 (Don Antonio Maria Blanco                                                   1911~1999)


                     

  


     인도네시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부분 ‘발리’를 가장 많이 말한다. 발리는 수도인 자카르타보다 외국인들에겐 더 친숙하고 많이 알려진 곳이다. 인도네시아와 인도를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그러나 신기하게도 발리가 인도에 있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있다는 것만은 대부분 정확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횟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발리를 다녀왔다. 모든 것이 느리고 단순하게 흘러가는 적도의 섬나라에 산다는 건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을 견디면서 사는 것은, 변화무쌍하고 전투적이며 드라마틱한 일상에 시달리며 사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때 이 섬나라에 발리가 있다는 건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 반이면 발리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를 얻었다.




      어쩌면 당신도 그럴 것이다. 어느 날 발리나 다녀오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싼 비행기 티켓을 찾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그 모든 일상의 반복에 어지간히 지쳐있다는 뜻이다.




(사진- 블랑코 르네상스 미술관/ 우붓, 발리)




    발리에서도 나는 우붓을 사랑한다. 그곳에 가면 구역마다 달라지는 독특한 풍경과 끈적하고 낯선 공기, 발리의 여느 휴양지와는 완전히 다른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같은 발리 안에서도 완전히 독립적인 이방의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우붓을 다스리는 왕족은 옛부터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유럽의 수많은 화가들을 우붓으로 불러들여 이곳에 발리 회화의 초석을 만들었고 그들에 대한 경제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우붓에는 발리에서도 가장 예술적이고 뛰어난 갤러리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고 길거리 어느 곳에서나 크고 작은 화상들을 만날 수가 있는데, 이 모든 토대는 우붓 왕조의 적극적인 예술 지원책에서 비롯된 결과들이다.




(사진 - 안토니오 블랑코)

  

  


     안토니오 블랑코는 원래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스페인계 화가였다. 고등학교까지 필리핀에서 공부한 후 뉴욕 국립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했고, 이후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호안 미로와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자신의 태생적이고 예술적인 뿌리가 그들과 닿아있다고 믿었다.




     1952년. 세계를 여행하던 블랑코는 마침내 발리에 도착했다. 6개국의 언어를 구사했다는 젊은 블랑코는 단번에 아름답고 몽환적인 발리의 분위기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마치 예정되었던 운명처럼 레공 댄스를 추는 니 론지(Ni Ronji) 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레공은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인 가믈란에 맞추어 왕궁에서 추는 발리의 전통 춤이다. 얼굴 표정과 눈동자의 움직임, 그리고 섬세한 손가락 동작과 맨발을 환히 드러내는 스텝으로 인간의 희노애락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부터 이미 여인의 몸을 묘사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블랑코에게 레공 댄스를 추는 발리의 여인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발리에 들어온지 불과 일 년 만에 레공댄서 니 론지와 결혼을 했고 발리에 정착했다.




      인도네시아는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종교가 없다는 건  부모없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주민증에 반드시 종교를 기록하게 되어있다. 블랑코는 론지와의 결혼을 위해 카톨릭이었던 자신의 종교를 아내의 종교인 힌두교로 개종한다. 아마도 그는 인도네시아 인으로 살기보다 발리 인으로 살기를 더 원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죽을 때가지 자신만의 정원에서 발리의 여인들을 그리는데 집중하였다.




     지금은 발리를 소개하는 여느 엽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발리 댄서의 그림은 대부분 블랑코의 그림에서 분위기와 표정을 빌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그림 모델은 늘 아내와 딸이었다.  




      발리에 정착하여 발리의 여인을 그리는 이 스페인 화가를 위해 우붓의 왕조는 그가 마음놓고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토지를 하사한다. 우붓의 짬뿌안 (Campuan) 지역에 그의 화실 겸 자택을 짓도록 지원한 것이다. 그는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그만의 왕궁에서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안토니오 블랑코의 발리 여인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자주 놀라는 일 중에 하나는 왕족은 물론이거니와 일반인들도 자신만의 갤러리나 집안의 전통을 전하고 보여주는 크고작은 박물관들을 개인적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인도네시아 예술을 지키는 화가들의 그림을 구입하고 집안에 거는 일을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며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마치 갤러리에 들어선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은 그림들이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풍경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그림들이 집안에 둘 수 없을만큼 많아지면 서슴치 않고 자신만의 갤러리를 만든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부자들이다.처음엔 그것이 땅이 넓은 나라의 부자니까 그만한 공간을 확보하기 쉬운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어느 나라에나 부자는 다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350여 년의 네덜란드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그들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는 태도에서 유럽식 사고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몸에 배여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50년이라는 세월의 길이와 무게를 가늠해 보자면 그것은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블랑코 박물관 내부


   아무튼 블랑코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우붓 왕조에게 엄청난 수혜를 받은 대표적 화가 중의 한 명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옆에 두고 자신만의 정원에서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렸기 때문일까….. 그의 그림 속 발리 여인들은 한결같이 로맨틱하고 아름답다. 그 여인이 댄서라도 그렇고 신에게 바칠 제물을 들고가는 평범한 힌두의 여인이라도 그렇다. 풍부한 표정과 몸매, 풍성한 이야기를 담은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순수하나 어딘가 모르게 에로틱한 느낌마저 주는 여인들이다. 극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사랑과 발리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특히나 그림을 장식하는 액자를 작품의 일부로 여겨서 프레임과 그림을 한 작품으로 연결시키기를 좋아했다. 가끔은 프레임이 지나치게 화려해서 뭔가 지나친 낭만성이 느껴질 지경이다.   게다가 안토니오 블랑코는 꽤나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의 아들인 마리오 블랑코가 지키고 있는 <블랑코 르네상스미술관>에 가면 19금의 방이 있다. 액자로 앙징맞은 문을 만들어 그림을 가려놓았는데 그림을 보여달라고 하면 아마 가이드를 맡은 젊은 청년이 슬쩍미묘한 눈웃음을 날리면서 그림을 열어 보여줄 것이다. ‘내가 이거 설명 안해줘도 다 알지..?’ 하는 표정과 함께.





(그림 4- 발리 여인/  안토니오 블랑코)



      

       1999년. 블랑코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내 니 론지는 다시 레공 춤을 가르치며 그를 추억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 마리오 블랑코는 아버지를 이어 화가가 되었다. 미술관에는 안토니오 블랑코와 마리오 블랑코의 그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정원에 들어서면 요란하게 떠들어대는앵무새들의 인사를 들으며 시원한 웰컴 쥬스 한 잔을 받아 마시게 될 것이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기전에 그가 살았던 정원의 계단들과 잘 정돈된 나무들을 보면서 잠시 숨을 고르시라. 그리곤 어색할 정도로 요란한 인상을 주는 출입문을 지나 그의 발리 여인들이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서면 된다.

 



     화가로서도,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도, 한 여인의 사랑을 받았던 남자로서도 안토니오 블랑코의 삶은 풍부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니 덩달아 행복하게 그림을 둘러보면 된다. 혹시 마리오 블랑코를 만나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길 청해도 좋다. 안토니오블랑코가 그림을 그리던 곳에서 마이클 잭슨과 잉그리드 버그만, 멕시코 여왕, 수카르노 대통령, 수하르토 대통령 등이 그의 그림을 사랑했던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  300여 점의 그림을보며 안토니오 블랑코의 꿈 속을 함께 걷다가 나오면 아마도 노을이 지고 있을 것이다.



누드



     

글: 채인숙(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1999년부터 자카르타에 거주하며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에 관한 글을 쓴다.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 <인작>과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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