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교사 임용시험 열 번 떨어진 후기

by 나연

어려운 길의 끝에서 승리한 사람은 당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립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가장 마음 떳떳한 일이지만 합격자는 고서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같다. 나는 이 시험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지도 못한 채 괴롭기만 하다. 2019. 1. 20.


누구나 읽고 싶은 것은 아무래도 합격 수기겠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불합격 수기 밖에 없어 그것을 쓴다. 겨울에 한 번 있는 그 시험은 많이도 나의 가을을 앗아갔다. 사실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부끄럽고, 익숙해진 패배에 열정을 잃은 지는 조금 오래되었다. 체념으로 얼룩진 도전을 하면서 마음이 가난해졌다. 어느새 나만 놓으면 끝나는 시험이 되었다. 아무도 내가 이 시험에서 얻을 결과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고, 나 자신도 큰 기대가 없었다.


그동안 공립학교에 3번, 사립학교에는 7번 지원하여 시험을 쳤다. 사범대학을 나와 딱히 다른 길을 고민하지는 않았으나 본격적으로 공부한 두 해 말고는 언제나 어중간한 성적으로 마음만 괴로웠다. 시험을 치는 기간 내내 나의 과목은 티오가 심각하게 말라붙었고 해가 지날수록 학업을 지속할 동기도 급격히 낮아졌다.


그럼에도 이 시험을 포기할 용기를 내는 쉽지 않았다. 교사 이외에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지 않은 유년시절의 마음을 저버리기 어려웠고, 교사의 안정된 직업적 위치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오랫동안 같은 길을 함께 걷는 선후배나 동료들도 꽤 있었고,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시험을 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이러다 시험 치는 꼬부랑 할머니로 방송 타겠다며 시시덕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해부터는 정말로 그 시험을 더 이상 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마음을 담은 글이 혹 지나치게 패배적이거나 자기 연민에 가득 차 보일까 염려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전에 가려던 문을 잘 닫고 다른 방향의 문을 잘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공부가 괴로워서 중간에 시작한 기간제 교사 일은 다른 종류의 행복과 괴로움을 동시에 주었다. 일을 하니 당연히 보다 공부에 집중하기가 려워졌다. 또한 일을 할수록 이 일이 좋으면서도 너무 싫어서 정교사가 정말 되어야 하는지 더욱 헷갈리게 되었다. 그때 마침 오래 몸 담고 있던 사학 재단에서 연속으로 귀한 티오를 내주었. 그래서 포기하고 싶던 마음을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한 해씩 도전의 기한을 연장했다.


사립학교 시험은 공립학교의 시험과는 결이 다른 불안함이 있다. 사립학교의 1차 필기시험은 공립학교 시험을 위탁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붙을 수 있다. 사립의 1차 시험 커트라인은 공립에 비해 현저하게 낮으며, 시험을 거의 매년 치는 나 같은 사람은 감을 대충 찾으면 합격할 수 있다.


하지만 불안한 부분은 2차 시험에서 시작된다. 면접과 수업 실연으로 이루어진 2차 시험은 재단 자체 인사들을 통해 치러지고, 언제나 그 안에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많은 소문들이 떠다닌다. 면접과 실연이 원래도 자신이 없었는데 무성한 소문들도 마음을 어지럽혔다. 전한 실력 이외의 외부 조건이 합불을 좌우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불신감이 찰랑거렸다.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한 느낌을 찾으려면 공립학교 시험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쪽은 1차 시험에서 한 문제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 살얼음판이다. 공립시험에 통과해서 특정 도시 지원자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립학교는 낯이 익은 사람들을 많이 임용한다는 오래된 소문에 힘입어 오래 일한 재단에 시험을 네 번이나 쳤다. 내가 조금이라도 시험에서 유리하다고 믿을 수 있는 구석은 그것밖에 없었다.


어떤 마음이었든 모든 도전들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마도 가장 큰 패인은 스스로 이 직업에 확신과 자신감이 없었던 것에 있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관리자가 마음에 들어 할 역량을 보다 잘 드러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자꾸 다른 선생님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되었다. 언제나 나의 장점은 잘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재능은 멀리서도 빛이 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있는 것만 같은 여러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언제쯤 조금이라도 빛날 수 있나 생각하곤 했다.


자꾸만 이 업에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말주변이 없고 수줍음이 많으니 면접이나 수업 실연 시험을 칠 때도 매력적으로 비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지만 마음속 깊이 내재하는 열등감은 내가 더 최선을 다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었다. 이는 면접장에서도 나를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 2차 시험에 부적격한 성향을 가진 것이 사실이더라도 스스로가 잘할 수 있다고 믿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면 어쩌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난 그 부분에서 실패를 했다.

시험에 연속으로 불합격하니 혼자 속상한 것을 넘어 다른 부작용이 나타났다. 합격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해마다 더욱 못나지는 것이다. 내가 떨어진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과 단체 연수 장소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패인을 나 자신에게만 겨누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합격한 사람들을 깎아내리려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앞에서는 쿨한 척했지만 마음 한 편의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합격자들의 부족해 보이는 능력에 대한 뒷담화와 그들의 뒷배경에 대한 추측과 비꼼이 공공연하게 있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다친 마음을 지켜낼 수 없지 않느냐는 말에 고개가 쉽게 끄덕여졌다.


그렇지만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스스로 '말주변이 없고 수줍음이 많아 시험에서 떨어졌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실력이 부족했다'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사실인지 알 수 없듯이, '합격자가 재단과 모종의 연이 있어 쉽게 붙었다더라' 하는 말도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공허한 말일뿐이다. 그걸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합격자들을 미워해봤자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다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해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음 아픈 못난이 상태를 멈추려면 시험을 그만 쳐야 했다. 계속 시험에 떨어져 내가 이 재단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는 것이 탄로 난 부끄러웠다. 그 와중에 합격자들을 질투하는 마음까지 들켜서는 안 되었다.


자꾸만 내가 못나지는 임용 시험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관심을 돌릴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싶은 것이 진정으로 맞는지,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분야는 무엇인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일상 속에서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는 나만의 요소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험에 열 번을 떨어지고 서른 중반이 지나서야 더 천천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각이라면 더 느긋하게 가보기로 했다. 더 이상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지 말고, 나를 가엾게 여기지도 말고, 나를 혼내지도 말자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