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서 몇 년간 공부해 온 착실하고 똑똑한 선배는 수고했다는 한 마디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시험이 노력을 이렇게 배신한다고, 울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 길이 가시밭인걸 알아도 우리는 시간을 되돌렸을 때 다른 길로 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서 온 길이다. 돌이킬 수 없으니까 어떻게든 선택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2019. 1. 16.
특정 시험을 몇 년에 걸쳐 계속 치는 사람들은 단순히 떠나야 할 시기를 모르는 미련한 바보들일까? 그렇게 속단하는 건 다소 무례한 접근일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진 꿈의 서사가 있다. 같은 시험을 치는 사람들도 비슷한 듯 아닌 듯 마음가짐이 조금씩 모두 다르다.
이 시험을 치는 것이 예컨대 나에게는 스스로를 옥죄는 일에 가까웠다. 오랫동안 배우고 익힌 분야가 이것뿐이라 시험 치르기를 쉽게 그만 두지 못했다.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면 이 지난한 도전을 그만두고 그 길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은 없었으므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길이 누군가에게는 숨통을 트는 길일 수 있다. 이 시험을 매년 치면서 자신의 꿈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리 공부가 고달프고 결과가 쓰려도 익숙한 계절을 맞이하듯 다시 시험을 친다.
시험 경쟁률이 높아져서 '저 사람이 합격하지 못하다니...' 싶은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런 사람 한 명을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 공부도 잘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성실함도 갖춘 학부시절 선배. 합격만 시켜준다면 외딴섬에 가도 괜찮다던 그녀는 3년 동안 공립학교 임용 시험에 도전했지만 합격이 쉽지 않았다. 임용 시험 준비에 너무 지쳤던 그녀는 교육행정공무직 시험에 한 번 도전했는데 반년만에 바로 합격했다. 오랜만에 들은 합격 소식에 그녀는 사막에서 물 만난 사람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그녀의 행보는 대체로 예상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공무원이 되었으니 공부를 그만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그녀는 그 이후에도 틈틈이 공부하여 임용 시험을 쳤다. 공무원 일도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공무직의 삶의 양식이 자신의 삶에 서서히 뿌리내리는 느낌을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일을 하면서 평생 사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고 했다.
그녀는 숨을 쉬기 위해 시험을 다시 쳤다. 너무 간절했던 꿈을 내려놓는 것은 어쩌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 일이고,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무겁더라도 꿈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오히려 삶을 생기 있게 만든다. 다행히 그녀는 이후에 교원이 되었다. 집요하게 교원 임용 시험의 끈을 놓지 않던 중에 1, 2차 시험 모두를 공립학교 시험에 위탁한 한 사립학교 시험에서 합격했다. 이런 경우 공립학교에 합격하기에도 충분히 실력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공립학교 시험에 미련이 있다. 지독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버티며 꿈을 지키는 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녀의 이야기로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의 원인 결과론적인 교훈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포기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결과를 예견하지는 못한다. 포기하지 않을 수밖에 없어서 포기하지 않다 보니 일정 수준의 성취가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지겨운 줄다리기 끝에 원하는 자리에 가게 된 사람은 자신이 남들보다 뭔가 많이 뛰어나서 성취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이 수없이 내쳐지고 한없이 작아진다. 매순간 쪼그라드는 자신감을 지키기 위해 절대적인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인내한다. 할 수 있다는 지인들의 가벼운 응원에 고맙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어도, 어떤 밤에는 자려고 감은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아 당황했을 사람. 그렇게 현자처럼 겸손해진 그들은 합격을 하면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운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