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3일 (토)
4월 13일 토요일 집에 가는 길,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주머니가 열쇠를 떨어뜨렸다.
그 아주머니는 열쇠가 떨어진 줄 모르시는지 그냥 횡당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열쇠를 주어 아주머니에게 드렸다.
아주머니는 엄청나게 감사하며
나에게 연신 목과 어깨를 움직여 인사를 하셨다.
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아주머니의 감사함을 더 잘 받을걸'라고 생각했다.
저 상황이 어쩌면 누군가에게
엄청 사소한 일 이겠지만,
길을 갈 때 길을 가고,
버스를 탈 때 버스만 타는 이런 나에게
떨어진 물건을 주어 주인을 찾아 준다는 것.
이건 나에게 아주 큰 변화다.
3월 초 출근길,
플랫폼에 지하철이 정차되어 있어
그것을 타기 위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거의 도착했을 때 내 맞은편에서 오던 남자가
내가 지나갈 수 있게 내 앞에서 멈춰 줬지만,
그 남자 뒤에 있던 다른 남자가 나를 막아
지하철은 타지 못했다.
놓친 지하철을 보면서 화가 났지만,
안전문 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불현듯 생각이 났다.
‘나는 누군가가 뛰어갈 때
그 남자처럼 양보했던 적이 있었나.?’
아주 오래전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도움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나에게는 몇 번이나 찾아왔고
그때마다 내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아, 나 정말 운이 좋았던 사람이구나.
타인에게 받은 배려와 도움을
나는 돌려주지 않았구나. 어떻게 돌려주지?’라고
나에게 질문했다.
답은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로 정리 되었다.
며칠이나 찾아보았지만 원하는 활동은 없었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예술 관련이었던 거 같다….;)
‘양보하는 삶’이라는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고 봉사 활동이 아니라
오늘 하루하루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날부터 뇌 한쪽에 (양보, 배려) 단어들을
넣고 다녔고, 그 상황에서 그냥 열쇠를 주었던 것 같다.
작년부터 ‘어린 이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지금,
글자로 있던 단어들이 나의 생활에 스며들어
느껴지고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는 지금,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