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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Feb 14. 2024

법을 대신하는 폭력

- 드라마 <비질란테> (2023)와 <살인자 O 난감> (2024)

  최근 사적 처벌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횡행하는 것 같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만들어 내는 모순만큼 사적으로 악인을 처벌하는 이야기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가까이는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비질란테> (2023)가 있고, <살인자 O 난감> (2024)까지 사적 처벌과 복수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강렬한 악인과 그를 처벌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두 작품의 결은 다르다. 


  드라마 <비질란테>는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악인들을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사적으로 처벌하는 김지용의 행위가 지닌 선의를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소비하는 언론의 방식이 오히려 폭력적이라고 느껴진다. 드라마의 초점은 김지용이라는 비질란테의 탄생과 그가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악인들을 어떻게 섬멸할 것인가에 있다. 김지용의 선택에 반대하며 국가와 법의 권위에 신뢰를 보내던 조헌마저 자기 신념을 버리고 동조하게 된다는 점에서 법이 지닌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반면 <살인자 O 난감>은 우연한 살인이 악인들을 처벌하는 행위가 되고, 악인을 알아보는 능력을 지닌 이탕이 사적 처벌을 지속해 나간다는 설정이다. 이탕과 그의 사이드킥을 자처하는 노빈은 자신들의 사적 처벌이 사회를 정화하는 행위라고 믿는다. 하지만 노빈이 이탕이 지녔던 신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송촌이라는 연쇄 살인마가 나타나면서, 그들의 신념이 망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송촌이라는 인물은 작은 악에도 자비가 없다는 점에서 악인을 처벌해 사회를 정화하자는 신념은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로 작용할 뿐이다.


  드라마 <비질란테>는 법의 권위가 신뢰를 잃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신념을 지닌 개인이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살인자 O 난감>은 그러한 신념이 정도를 넘으면,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당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드라마는 현실의 법이 권위를 잃었고, 그것의 집행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국가가 악인을 처벌하지 못하면, 결국 불만을 품은 개인이 나서게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무수한 폭력의 연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철학자 들뢰즈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가 타락하면, 곧 사회가 타락한다고도 했다. 그의 말처럼 드라마 <비질란테>와 <살인자 O 난감>이 보여주는 사적 처벌의 행위는 법이 권위를 잃고 타락한 사회의 한 단면을 예증하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을 초월해 누군가를 처벌할 권리가 누구나 있다면, 그것이 사회를 정의롭게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폭력적인 일상이 지속될 것이다. 홉스는 사회를 “만인에 대한 만인들의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사회에서 만인은 만인과 투쟁 중이다. 언제나 개인이 다른 개인을 사적으로 처벌하고 복수할 이유가 너무도 많다는 뜻이다. 


  한 개인의 사적 처벌이 정말 누구에게나 허락된다면, 길거리에는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가 지속될 것이고 주검들이 바닥에서 발견될 것이다. 과연 폭력이 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까? 폭력은 결국 다시 폭력의 반복을 낳을 뿐이다. 그래서 홉스는 오히려 국가와 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국가라는 정치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사적 처벌의 욕망은 제거될 수 없지만 그것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절차적 정당성에 따라 해결하려는 노력이 바로 법이고, 국가에 의해 공적으로 집행되어야 불필요한 연쇄적 폭력의 순환을 끊일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법으로 보이지만, 법은 무수한 역사적 고민의 결과이고, 법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무수한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이 양산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현실 속에서 법은 무력하지만, 법이 없는 사회는 만인에게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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