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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Feb 21. 2021

사다리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한 지 두 시간쯤이 지났다. 컨디션은 매우 좋다. 기온도 적당하고 바람도 세게 불지 않는다.  시작이 아주 괜찮다.


무심결에 아래를 내려다보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사다리를 오를 때 언제나 시선은 위쪽을 향해 있어야 한다. 아래쪽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미련이 있다는 뜻이고, 그 미련의 무게가 결국 사다리에 오른 사람을 떨어트린다.  내려다보는 대신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살던 동네를 그려봤다.  높은 정글짐이 서 있는 놀이터, 어렸을 때 두어 번가량 몰래 과자를 훔쳐 먹었었던 슈퍼. 독서실과 피시방은 한 건물 한 층에 나란히 붙어있어서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힘든 선택을 내릴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살았던, 천변에 위치해 있어서 홍수가 나면 자주 물바다가 되곤 했던 나의 집.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우리 루키.  동생이 산책을 자주 시켜줘야 할 텐데.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 루키가 수풀이 무성한 곳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오면, 나는 똥을 치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면서, 자고 있던 루키의 보드라운 배를 만지던 때를 생각하니 어딘가에서 루키가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여기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만한 높이가 아니다.   키우던 강아지를 들고 사다리를 오를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다리 위의 이 조용함이,  내가 가지고 있던 루키가 짖는 소리에 대한 기억을 마치 실제 소리인 것처럼 선명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연히 첫 번째로는 실족을 조심해야 한다. 천장의 전구를 가는 그런 사다리가 아니다. 발을 헛디뎌서 떨어지면 바로 즉사한다. 그렇게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기 때문에 누군지 식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키던 공무원들이 퇴근하는 밤이 되면, 사다리 밑은 그야말로 들짐승들의 연회가 열린다고 보면 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변덕스럽게 구는 날씨도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위험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초여름에 사다리를 오르는 이유는 물론 온도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체력소모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상공의 날씨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구름 아래의 이야기다. 초여름의 맑은 날에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사다리를 오르면  삼일이 되었을 쯤에 구름층을 만나게 되는데 그다음부터의 날씨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타는 듯한 태양이 맨손으로는 일초도 잡지 못할 만큼 사다리를 뜨겁게 달구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해를 가리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비가 쏟아진다.  비는 모든 것을 미끄럽게 만들고, 무엇보다 금방 사람의 체온을 떨어트린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고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느 정도 높은 곳에 오르면 이상한 것이 들리고,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기 중의 낮은 산소 농도와 낮은 기압 때문에  정신 착란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발 한번 잘못 내딛으면 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사다리 위에서, 주변에 말을 걸어주거나 손을 내밀어줄 사람 하나 없는 이 외길 위에서 선명한 정신을 잃는다면 바로 끝이다. 





손목시계의 알람이 울렸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나는 왼쪽 팔을 사다리의 칸에 끼워서 몸을 단단히 고정한 뒤에, 오른팔로 배낭 뒤에 묶여있던, 나무로 만든 간이 의자를 챙겨 왔다. 의자라기에는 다리 없이 판자 하나만 있을 뿐이지만, 판자 아래쪽의 홈에 사다리의 발판을 끼우고, 판자에 연결되어 있는 끈을 사다리에 묶으면 잠시 앉기에는 충분한 의자가 된다. 물론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은 이 위에서 잠까지 잔다. 

배낭을 풀고 의자에 앉고 나니, 해가 붉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사다리를 오르고 있을 때에는 해가 내 등 뒤에 있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보고 있자니 눈이 타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는 간소한 저녁상을 차렸다.  모든 짐을 직접 짊어지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음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침 여덟 시부터 지금까지, 점심을 먹으며 잠깐 쉰 것을 제외하고는 오늘 이미 아홉 시간 정도를 올랐더니 너무 허기진 상태였다.  마른 소시지와 푸석한 비스킷은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고, 나는 하마터면 내 일치까지 다 먹어치울 뻔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완전히 해가 져 있었다. 하늘은 주황색에서 보라색, 남색을 지나 이제는 완연한 검정이었다. 나는 옷을 껴입고, 방풍 담요를 내 몸에 둘러 감은 다음에 의자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다. 온도는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춥지 않았다. 아직 그럴만한 높이가 아니었다. 구름 너머로 별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달은 오늘 뜨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위로 계속 이어지는 사다리를 바라보았다. 별빛을 받아 어스름하게 빛나는, 평행으로 뻗은 두 선이 어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나흘쯤 뒤에는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쯤 뒤부터는 대기 중 산소가 급격하게 희박해지기 시작할 것이고, 해가 떨어지면 잠들면 다시 깨어나지 못할 정도의 추위가 나를 덮칠 것이다. 그리고 열흘. 내가 열흘이 될 때까지 버티며 계속 올라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사다리에 올랐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열흘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다리에 올랐다 돌아왔던 사람들 중에 제일 오래 올라갔던 사람의 기록이 열흘이었다.  돌아오지 않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거의 대부분이 떨어져 버렸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지만,  그래도 그들 중 몇몇은 사다리의 끝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사다리가 걸쳐져 있다는 것은 사다리의 저편이 존재한다는 말이고, 저편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만한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사다리의 끝에서 시작되는 다른 세계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로 연락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사다리의 끝에 있는 세계가 너무 좋아서, 한번 그곳에 도달한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몸담았던 사다리 아래쪽 세계를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사다리를 오르던 경험이 너무 괴로워서 두 번 다시는 사다리 근처에 얼씬도 하기 싫었을 수도 있다. 저마다의 생각들은 있었지만 다 빈약한 추론이었다. 언제부터 사다리가 있었는지, 누가 사다리를 만들었는지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몰랐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다리는 모두 열네 개. 모두 같은 모양, 같은 크기에 같은 색깔로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이제는 나의 생각을 말해보자. 나는 사다리의 저편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다리는 그저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구름 너머, 하늘 너머, 별과 달과 태양 너머, 본 적도 읽은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곳을 지나 끝없이 뻗어나가는 사다리들의 모습을 나는 상상한다. 누가 왜 사다리를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다리는 서있고, 사람은 사다리를 올라간다. 다른 내용들은 굳이 알지 않아도 좋다. 어떤 사람들은 사다리의 저편에 천국이며 유토피아며 무릉도원이 존재한다고 믿고 사다리를 오른다. 그곳에 도달해 두 번 다시 사다리를 타지 않기 위해서 사다리를 오른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내가 사다리를 오르게 만든 것은, 끝이 없는 사다리를 멈춤 없이 오르고 있는 누군가였다. 그 누군가에 대한 상상이었다.  시작은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우연히 사다리를 오르는 어떤 사람의 뒷모습을 봤을 때였다. 키가 작고 마른, 긴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선명한 빨간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응원과 작별의 슬픔이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몇몇 사람들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그 사람은 모두와 포옹을 나누고는,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하루에 여덟 시간씩 사다리를 올랐다. 천천히, 지치지 않고 마음의 동요 없이 오르고 올랐다. 매 끼니 정해진 양의 음식을 먹고, 추위와 싸우면서 규칙적으로 자고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규칙적으로 사다리를 오르고 규칙적으로 쉬었다.  그렇게 구름을 뚫고, 하늘을 넘었다. 그 사람이 높이 올라갈수록 내 마음속 그 사람의 이미지도 점차 선명해졌다.  손과 발은 온통 물집 투성이었다. 그 사람을 말을 잊지 않기 위해 혼잣말을 했다. 사다리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빗물을 받아서 빨래도 했다. 해가 워낙 가까워서 빨래는 금방 말랐다. 눈이 내리면 그 사람은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어서 자신의 배낭 위에 올려놓고는,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올랐다. 다시 해가 떠서 눈사람이 녹으면 그 사람은 잠깐 슬퍼했지만 다시 곧 눈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참 뒤에, 빨간 배낭을 멘 사람이 실제로는 네다섯 시간 만에 내려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상상 속에서 그 사람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먹던 아침을 마저 먹은 다음에 짐을 챙겼다. 그리곤 다시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 생각해오던 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다. 그 사람은 나였다. 






눈부신 햇볕이 나를 깨웠다. 불편하게 온 몸을 구부리고 잔 탓에 여기저기가 쑤셔왔다. 간밤에 바람소리와, 나의 짐들이 바람에 푸드덕 거리는 소리들 사이로, 루키가 짖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저편으로는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등뼈처럼 솟아오른 산맥들 사이로 구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짐을 정리하고 아침으로 육포를 뜯어먹으면서 무심결에 아래를 내려다보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사다리를 오를 때 언제나 시선은 위쪽을 향해 있어야 한다. 대신 정글짐, 놀이터, 천변의 우리 집과 엄마 아빠 동생과 루키를 생각한다. 두 어번 과자를 훔쳤던 슈퍼를 생각한다. 어릴 때 좋아했었던 쵸코맛 과자의 달콤함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 과자를 챙겨 올 걸. 


나는 짐을 정리하고 신발끈을 동여맨다.  바람은 조금 불지만 나쁘지 않은 날씨다. 눈 아프게 파란 하늘 위의 어느 점 속으로 사라지는 사다리를 한번 올려다 보고,  오늘의 첫 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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