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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Feb 28. 2021

금요일

2021년 2월 26일. 7시 5분 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에 있는 프릿체 슈트라세의 어느 건물 중정을 지나 2층으로 오르면 "No" 라고 적혀있는 문이 있다. 당신은 뚜벅뚜벅 계단을 걸어올라온 뒤에 그 문을 열으려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한다. 주머니에 꽂아놓은 손에서 작은 종이 하나가 만져졌기 때문이다. 


어제 샀던 유로 로또 종이다. 당신은 로또를 자주 사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제는 살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꿈에서 사슴이 나왔다.  말을 하는 사슴이었다. 경상도 억양이 분명히 들렸지만, 독일어였다. 독일에서 산지 이제 칠년이 넘었지만 독일어로 꿈을 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슴은 이렇게 말한다. „Wenn du  morgen Lotto kaufst, kann ich schon ab 19.00 Uhr anfangen, mich zu freuen 너가 내일 로또를 산다면 나는 17시부터 기뻐질거야" 


19시, 오후 7시. 글쓰기 모임이 열리는 시간이다. 동시에 유로 로또의 당첨번호가 추첨으로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당신은 지금까지 이년이 넘는 기간동안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한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당신은 오분 일찍 이 문 앞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한번쯤은 지각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남자 진행자가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그다음에 숫자가 적힌 공들이 핵분열 상태 직전의 원자들처럼 정신없이 바람에 날리며 서로 부딪히는 투명 구 안에 손을 집어넣어 모두 일곱 개의 공을 다 꺼내기까지 십분. 당신은 그 정도는 지각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지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혹시라도 당신이 1등에 당첨된다면, 그래서 300만 유로의 당첨금이 (물론 세금을 제외하면 액수가 조금 줄어들겠지만) 당신의 것이 된다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는,서로가 써온 글을 진지하게 읽고 듣는 자리에서 알게 된다면… 당신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당신의 표정은 누가 봐도 „로또 일등에 당첨되었다는 것을 방금 알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도저히 숨기지 못하는“ 그런 사람의 얼굴이 될 것이다. 당신은 글쓰기 모임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다들 착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300만 유로의 값어치가 있는 종이가 당신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짐승들로 변할런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너무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고 이 글을 듣는 당신은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은 사슴의 꿈을 꿨다. 사슴이 경상도 사투리의 독일어로 로또를 사라고 말했다. 이 계시는 당신에게 너무 선명하다. 300만 유로는 당신의 것이 된 것이나 진배없다. 당신은 가방에서 폰을 꺼내서 라이브로 곧 시작될 로또 추첨 방송을 보기 위해 방송국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순간 계단 아랫쪽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글쓰기 모임의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반층 위로 올라간다. 

„오늘 사람들 많이 오려나?“ Z의 목소리다.

„아마 일곱은 올걸?“ U의 목소리다. 


Z놈 자식. 당신은 생각한다.  집이 U와 같은 방향이라는 이유로 Z는 언제나 U와 함께 붙어다녔다. Z가 현학적이지만 알맹이는 하나 없는 자신의 글을 읽을 때면 당신은 언제나 코와 입술 사이, 그 좁은 인중을 따라 무질서하게 난 콧수염을 한번은 모조리 뜯어버려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당신이 직접 더 풍성하고 정돈된 콧수염을 길러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끝이다, Z. 곧 당신은 300만 유로를 손에 쥐게 될 것이고, U에게만 그 사실을 살짝 말을 할 것이다. 당신과 U는 함께 괴테 인스티튜트에서 수업을 들을 것이고,  슈프레 강이 내려다보이는 팬트하우스에서 WG를 꾸려 함께 파스타를 해먹게 될 것이다. Z가 낄 자리는 없다.


„오늘은 사람들 글 다 읽으면, 우리끼리 먼저 일찍 나올까?“

이 목소리가 Z이라면 당신은 또 Z가 먹히지도 않는 수작을 또 부린다며 혀를 찼을 것이다. 하지만 말한 사람은 U다.

„우리 같이 나오면 좀 티나는 거 아니야?“

„티나도 되지 뭐. 계속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잖아 우리.“

„그럼, 어디서 와인이라도 한잔 할까?“

„좋아.“

U는 까치발을 들어 지어 Z의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향한다. 당신은 작고 경쾌한, 깊이가 얕아서 밑의 혈색들이 비치는 특정한 피부들끼리 서로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Z의 지저분한 수염이 U의 입술을 간지럽혔을 생각을 하니 당신은 견디기가 힘들다. 하지만 300만유로를 생각하면서 당신은, 그 한쌍이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꾹 참는다. 


털이 복실하게 난 남자의 손이 공 하나를 꺼내고, 계단으로 A가 올라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공 하나를 꺼내고, K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공 하나를 꺼내고, R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공 하나를 꺼내고, 다시 공 하나를 꺼내고, 꺼내고, 꺼낸다.


화면에 표시된 일곱자리의 숫자를 당신은 당신의 주머니에서 꺼낸 로또 용지에 표시된 일곱자리의 숫자와 비교해본다.

일치하는 숫자는 하나도 없다. 당신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탄식을 내쉰다. 며칠 안으로 매츠커라이에 가서 사슴고기를 사와서 먹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일곱시 십오분. 당신은 허탈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A, K, R, S, 그리고 Z와 U가 넓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당신을 맞는다. 언제나처럼 Q는 아직 오지 않았다.  표정 관리를 하면서 인사를 하던 당신은 Z가 입고 있는 니트를 본다. Z의 가슴팍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을 발견한다. 풀을 뜯던 사슴이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사슴이 입을 연다.

„ ha ha ha ich freue mich sehr, du versager 하하하 아주 기쁘군, 루저놈아“

나는 벌떡 일어나, 사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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