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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비 Jan 14. 2023

‘중꺾마’ 말고 ‘온다안’

이유리 「왜가리 클럽」

“온 마음을 다 쏟아도 안 되는 일이 있기는 있더라고요.”


이유리의 단편 소설 「왜가리 클럽」을 읽고 나면 성경 속 한 구절이 떠오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29절.


왜가리 클럽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3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는 반찬가게 주인 양양미다. 양양미는 자신의 이름을 본 딴 양미네반찬 가게를 열었다. 처음에는 장사가 곧잘 됐다. 그러나 ‘다른 맛있는 것들’에 차츰 밀려났고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됐다. 양양미는 구청 홈페이지에 들러 양미네반찬 폐업 신고를 한다.


양미는 이제 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는 좀 쑤신다. 소일거리 삼아 동네 천변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왜가리를 보게 되고, 왜가리 클럽에 스카우트된다. 눈치 빠른 분은 이미 눈치채셨으리라. 양미에게 쉼을 주는 구세주는 바로 왜가리, 왜가리 클럽이다.


양미는 반찬가게 폐업이 꼭 자기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아 마음 아프다. 그러나 왜가리를 보며, 또 왜가리를 함께 보며 위로를 받는 왜가리 클럽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이들은 실패와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매 순간 물고기 잡기에 최선을 다하는 왜가리를 보면서 어떤 깨달음에 이른다.


“왜가리에게는 그저 매번 (먹이를) 잘 노려서 (부리를) 잘 내리꽂는 것만이 중요했고 그 뒤의 일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두 같았다.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같은 무게로 여기는 것에 가까웠다.”


소설의 말미에 양양미는 클럽 사람들에게 자신이 양미네 반찬 사장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곳 반찬 맛있었는데, 곧잘 갔는데, 왜 문을 닫았대요”라며 아쉬워한다. 양양미는 길 한복판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이들이 하는 위로는 꽤나 담담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열심히 해’ ‘힘내’ ‘다음에는 잘 될 거야’라는 흔한 위로는 아니다. 다만 실패를 그저 실패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위로의 말이다. 가령, 이런 말이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지. 살다 보면 꼭 있어, 그런 일이.”


“나는 애 키울 때가 그랬는데, 온 마음을 다 쏟아도 안 되는 일이 있기는 있더라고요.”


이를 테면 열안일(열심히해도안되는일), 온다안(온마음을다쏟아도안되는일)이다.


지난해 월드컵 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세간에 회자됐다. 줄여서 중꺾마다. 사람들은 좋다던데, 내게는 영 부담스러웠다. 성공할 때까지 마음을 꺾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아 괜히 무겁게 느껴졌다.


우리 일상은, 우리네 삶은 할 만큼 하고 설령 안된다고 해도 열안일, 온다안 정도로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하나 더 필요하다면 왜가리 클럽처럼 실패를 그저 실패로 받아 들이도록 위로해 줄 동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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