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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win Feb 27. 2019

#26 세븐 레이크에서 만난 천사, 죽다 살아나다

유럽_불가리아

안개가 개고 펼쳐진, 7개의 호수들(2개의 호수는 뒤편에 있다)

 그리스에서 만난 친구들의 추천대로 불가리아 세븐 레이크에 왔다. 불가리아 세븐 레이크는, 정상에서 경치를 둘러보면 7개의 호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각 호수마다 특징이 있지만, 정상에서 보이는 7개 호수의 광경이 장관이다. 


 세븐 레이크 정상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상 근처까지 리프트를 타고 가서, 정상까지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트레킹을 해서 올라가는 방법이다. 내가 방문한 시기는 비수기라서, 리프트 자체를 운영하지 않았다. 백패커의 여행은 뚜벅이므로, 자신 있게 트레킹을 시작했다. 산을 올라가면서 보이는 붉은빛의 단풍에 놀랐다. 유럽을 여행하며 다닌 산은 대부분 설산이어서, 흰색과 초록이었다. 불가리아에는 한국처럼 4계절이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보는 단풍이었다.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때로는 산에 있는 이정표를 따라서, 가끔은 머리 위에 멈춰 있는 리프트를 따라서 세븐 레이크 정상으로 향했다. 리프트를 이정표 삼아서 걷다 보면, 리프트의 종점이 나온다. 그곳에 산장이 있다. 보통 산장에 짐을 놓고, 정상을 보고 내려와 하루를 묵는다. 산장을 지나면 진짜 세븐 레이크 트레킹의 시작이다. 언덕을 올라가서 평야 하나를 넘는다. 그리고 절벽을 하나 올라가면 드디어 세븐 레이크가 보인다. 

세븐 레이크 정상에서 바라본 호수들

 언덕과 평야를 지나치면, 세븐 레이크의 호수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 아래서 발견한 두 번째 호수는 내 시야에 들어왔다. 두 번째 호수를 카메라로 클로즈업해보니, 옆에 산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는 호수가 있고 뒤에는 산장이 있으니, 텐트 치기에는 정말 좋은 장소였다. 호수에서 물을 퍼와 요리를 할 수 있으며, 비가 오면 산장 지붕 밑으로 텐트를 옮겨 비를 피할 수도 있었다. 오늘 밤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기에 정말 명당이었다. 세 번째 호수를 만났을 때,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먹구름의 느낌은 불안했다. 이 느낌은 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것일까. 한반도 모양의 네 번째 호수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므로, 사람들은 하나 둘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내려가도 돌아갈 산장이 없으므로, 계속 정상으로 향했다. 다섯 번째 호수에 도착해서, 심각하게 하산을 고민을 했다. 비가 계속 와서 몸이 완전히 젖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가 온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비가 그치면 날씨가 개므로 환상적인 경치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머리는 계속 고민했지만, 발은 올라가고 있었다. 여섯 번째 호수를 지나, 정상인 일곱 번째 호수에 도착했다. 눈 앞에 펼쳐진 경치는 장관이 아닌, 비로 인해서 만들어진 자욱한 안개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미 젖은 몸, 비가 그치기 만을 기다렸다. 혼자서 사진을 찍으면서 기다리길 30분, 안개가 개면서 비가 멈추었다. 눈 앞에 펼쳐진 7개의 호수는 아름다웠다. 세븐 레이크의 전경을 한참을 바라보고, 눈과 가슴에 담았다. 


산장 앞에 호수를 바라보며, 텐트를 쳤다

해가 진 산은 너무 위험하다. 해가 지기 전에 올라오면서 봐 뒀던, 두 번째 호수 산장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두 번째 호수에서 정상을 향해 바라보는 뷰는 좋았다. 이 맛에 텐트를 친다. 내가 텐트 치는 것을 보더니 산장 아주머니가 나왔다. 이곳에서 텐트 치고 자는 것은 좋은데, 엄청 추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당시 나는 오리털 패딩과 동계 침낭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때마침 젖은 옷도 다 말라서 추위를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지금 보면, 자연에 대한 오만이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리스에서 만난 베테랑 여행자로부터 배운 대로, 요리를 시작했다. 여행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은 여행을 하면 할수록 늘어가는 생존 방식과 다양한 여행 방식 때문이다.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어느 순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캠핑 경험을 통해 텐트를 사고, 그리스에서 만난 여행자를 통해 캠핑 버너를 사서 요리를 한다. 앞으로 남은 여행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무엇을 배워서, 내 여행이 어떻게 달라질지 스스로에게 기대가 되었다. 


밖에서 버너로 요리를 하다, 산장으로 옮겼다 / 토마토 스프 양파죽_ 배고프면, 먹을 만 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븐 레이크의 바람이 정말 강했다. 그래서 가스를 켜면, 가스가 바로 꺼졌다. 산장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산장 내에서 요리를 했다. 요리를 완성하고 막상 먹어보니, 역시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베테랑 여행자가 할 때는 쉬어 보였는데, 내가 하니 맛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배고프니, 그냥 먹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산장 아주머니께서 솔깃한 제안을 하셨다. 밖에서 자면 정말 추우니, 안에서 자는 요금을 할인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거절을 했고, 이 거절은 추후에 후회할 결정이 되었다. 일단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어둡고, 아무것도 안 보였다. 트레킹을 하며 고생한 발과 얼굴을 물 티슈로 대충 닦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침낭 속은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내 텐트를 노크하는 것은 세븐 레이크의 바람뿐이었다. 어느 누구의 또 다른 손님도 찾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것이 있다면, 고요한 어둠 속에서 빛나던 별들과 땅에서 올라오는 참을 수 있는 정도의 한기였다. 그렇게 10월 15일 세븐 레이크에서의 밤은 무사히 지나갈 줄 알았다.

비가 와서 급하게 산장 지붕 밑으로, 텐트를 옮겼다

 그리고 정확히 3시간 뒤,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휘이휭 하는 바람소리가 아닌, 따따따 따다닥 하는 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낮에 분명히 비가 왔기 때문에, 저녁에는 비가 안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문을 열어 확인하니 비가 오고 있었다. 정말 망했다. 오버트라운에서 비가 오면 어떻게 되는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혹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산장 옆에 텐트를 쳤으니, 비를 피하기 위에 산장 지붕 밑으로 급하게 텐트를 옮겼다. 이때가 저녁 11시 정도였다. 하지만 이 망할 놈의 비는 거센 바람을 타고, 내 텐트를 젖히기 시작했다.

산장 아주머니가 제공해준 침대, 침대 위에 나의 주황 침낭을 깔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닥이 잔디가 아닌 시멘트여서,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소량이었다. 물에 젖은 자리만 피해, 웅크려서 새우잠을 청했다. 그렇게 2시간을 자고 있었는데, 천사가 나타났다. 산장 아주머니였다. 역시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하필 그때 산장 아주머니가 화장실을 간다고 밖으로 나왔다. 산장에서 100M 떨어진 곳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면서, 문 앞에 텐트 친 나를 발견하셨다. 아주머니의 'Excuse Me? Excuse Me?'라는 물음에 나는 자는 척을 했다. 그간의 경험상, 문 앞에 텐트 치면 안 된다고 했던 주인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답을 안 하고 자는 척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Come on inside Come on'이라고 대답하셨다. 그 순간 1초의 망설임 없이, 'Yes Yes Thank U'를 연발하며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산장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더니 놀라며, 갑자기 뜨거운 물을 끓여서 주셨다. 내 몸이 많이 차가웠나 보다. 그리고 말없이 잠을 잘 침대를 주셨다. 덕분에 그날 밤은 감기에 안 걸리고 잘 수 있었다.

세븐 레이크 정상에서의 기념사진과 함께, 자연 앞에 겸손하자(산장 아주머니 정말 감사했어요)

 자연의 대단한 경치를 보며 그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 것은 정말 낭만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것도 자연이 허락해줄 때, 가능한 일이다. 나의 낭만을 위해 나의 욕심을 위해, 허락하지 않는 자연 앞에서 오기를 부리다 죽다 살아났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여행은 절대로 오기로 하면 안 된다. 세븐 레이크 산장에서 만난 천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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