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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win Mar 13. 2019

#28 곰이 나타난다는 부체지산에서의 하룻밤

루마니아_부체지산

 

 사람마다 여행하는 스타일은 각양각색이다. 다양한 스타일 중, 나는 자연경관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에서 산 타는 것을 좋아했다. 불가리아에서 루마니아로 야간 버스를 타고 넘어오던 새벽에, 붉은빛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는 일출을 봤다. 그리고 부쿠레슈티에 있는 호스텔에 머물면서 이런 일몰 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부체지산을 소개해 줬다. 동유럽의 알프스로 불리는, 루마니아에서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산이라고 했다. 부체지산으로 출발하는 마을은 시나이아 또는 부 스테니라고 불리는 두 마을이 있는데, 나는 부스테니에서 시작하는 하이킹이 경치가 더 좋다기에 부스테니에서 시작을 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케이블 카 아니면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부체지산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므로, 최소한의 짐만 가져가기로 했다. 부스테니역 락커는 1일에 8 레이이므로 패스하고 내 짐을 보관해줄 주민들을 찾아 나섰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다, 리디아 아줌마네 가게로 들어갔다. 짐 보관을 부탁하니, 흔쾌히 수락하시면서 응원까지 해주셨다. 


 기가 막힌 날씨를 배경으로, 부체지산 하이킹을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부체지산의 곳곳을 둘러보며, 하이킹을 했다. 뜨거운 햇살로 인해 이마에 땀방울이 차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며 올라갔다. 천천히 걷는 성인 걸음 기준으로, 약 4시간을 걸었다. 4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산장 하나가 나온다. 산장에서 바라보는 부스테니 마을은 정말 작다.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산장에서 부체지산의 랜드마크인 십자가를 보러 간다. 

부체지산의 랜드마크, Heroes's Cross

 부체지산에 있는 십자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십자가로서, 부체지산의 랜드마크이다. 부체지산에 오르면 꼭 한 번씩 오는 곳이다. 사람들에게 Heroes's Cross로 불린다. 세계 1차 대전 당시 동맹국에 대항하여 싸우던 자국의 전쟁영웅들을 기념하기 위해 1926년~ 1928년 2년 동안 지었다. 당시 루마니아 왕(Ferdinand)과 왕비(Marie of Edinburgh)가 볼 수 있도록 크게 지어졌다. 2014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십자가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십자가가 세워진 부체지 산은 해발 2325m이다. 십자가 단상 위로 올라가면, 부스테니 마을과 그 뒤쪽으로 단풍이 지고 있는 산들을 볼 수 있다.

부체지산은 곰이 출몰하는 지역

 오늘의 마지막 여정지인 일몰 포인트를 찾으러 이동한다. 정상에는 또 따른 산장이 있었다. 산장 옆에서 일몰이 너무 아름답게 지기에, 산장 옆에 텐트를 치려고 했다. 산장 옆에다 텐트를 칠 때는 산장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텐트를 치는 것이 예의이므로, 양해를 구했다. 산장 주인은 반대를 했다. 부체지산은 곰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캠핑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어디서 자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부체지산에서 30년을 살았다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현재 있는 산장에서 위로 올라가면, 또 하나의 산장이 나온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곳은 산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응급구조대 같은 성격이 강한 곳이라서, 그곳에서는 텐트를 치고 잘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팁을 주셨다. 그곳으로 향했다.

부체지산에서 마련한 보금자리

 그곳에 도착했다. 응급구조대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산장이었다. 다만, 산장 옆에 바리케이드 같지 않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서, 다른 산장보다 안전성은 높았다. 산장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고,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산장 주인아저씨는 저녁에 곰이 생기면, 바로 안으로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1박에 80 레이라는 말도 남기셨다. 부체지산에서 나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생존을 위한 영양섭취, 건강 죽

 서서히 붉어지는 하늘을 감상하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 왔다. 산에서 늘 해 먹는, 양파와 간장으로 간을 한 죽을 먹었다. '당연히 맛있다'라고 쓰고, '모든 음식은 생존을 위한 영양섭취'라고 읽는다. 저녁밥을 먹고 나오니 보이는 것은 별들 밖에 없었다. 고지대이면서 하늘이 맑아서 그런지, 이때까지 하늘에서 본 별들뿐이었다. 그렇게 많은 별들은 그때 처음 보았다. 정말로 별들이 하늘이 가득 채웠다. 텐트 지붕으로 보이는 별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슬슬 텐트에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산장 주인아저씨가 담배를 한대 피로 나오셨다. 아저씨와 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에 따르면, 최근 부체지산에서 곰에 의해 일본인이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곰이 맨날 출몰하는지 물어보니, 매일 출몰한다고 답했다. 오늘도 곰이 나타날 거 같은지 물어보니, 오늘도 나타날 거라고 했다. 오늘 밤에 곰이 오면 자기 산장으로 바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았다. 1박에 80 레이.


오늘 밤 나는 어떻게 될까? 곰한테 잡혀 먹을까? 아니면 다음 날 멋진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믿는다. 내가 여기서 죽을 운명이었으면, 받아들이기로. 앞으로 볼 것과 갈 곳이 많이 남았기에, 앞으로 할 일이 많기에, 앞으로 쓰일 일도 많을 거라고 믿기에, 마음 편하게 잠을 청했다. 이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여행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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