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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앎 Jun 12. 2020

부끄럼을 이겨내면

앞으로, 낫프로









 저는 남 앞에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걸 부끄러워하고 내가 만든 결과물이 하찮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 마인드로 맘에 들지 않아도 다수가 괜찮다면 나도 좋아(하는 척) 했던 사람입니다. 한아름 네가 뭔데 라는 자기 비하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누구한테 컨펌받거나 조율하는 일 없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작업을 좋아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개인과제를 선호했어요. 아이러니한 점은 의견을 말하는 건 부끄러워 하지만 관종끼가 있어서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발표는 부담스럽지만 적당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나 할까요. 다른 사람이 짜준 레퍼토리를 술술 읊는 거죠. 팀 과제였을 때는 함께 한 일이니까 발표가 더 쉬웠어요. 나만 흥하거나 망하는 건 아니잖아, 할 수 있어하는 생각으로요.


 하지만 회사에 가니까 이런 부끄럼은 버려야 할 마음가짐 1순위였어요. 아직도 세 번째 회사에서 내가 만들었던 이름을 처음 발표하던 일이 생생해요. (첫 번째 회사는 이런 일을 하는 회사가 아니었고, 두 번째 회사는 6개월 다니고 관둬서 세 번째 회사가 저에게는 찐이에요.) 금융 플랫폼 이름을 짓는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인턴 생활을 시작했어요. 각자 만든 이름을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회의 시간에 내 차례가 다가오자 심장이 쿵쾅쿵쾅 했어요. 선배들이 만든 이름을 차근차근 들으니까 내가 만든 이름은 구려, 제일 구려, 너무 구려, 나 어떡해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죠. 속으로 엉엉 울면서 이름을 설명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동안 쭈글이 상태가 계속됐어요. 자신감도 떨어지고 내가 이 회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죠. 회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힘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고 회사에 간신히 들어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좌절했어요.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으니 하루하루 혼자만의 동굴을 파면서 온 몸으로 우울의 기운을 뿜어냈어요.


 그 기운이 선배들에게도 전해졌는지 상무님과 팀장님이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혼나려나 했는데 요즘 힘들지도 시작해 아름님이 가진 긍정 파워가 좋았는데 점점 잃어가는 것 같다, 지금은 인턴이기 때문에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다, 다만 말이 안 되는 내용이더라도 자신감 있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답이 아니라 아름님만의 스타일을 보고 싶다, 고 조언과 충고를 길게 해 주셨어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죽상이었습니다. 내 스타일이 뭐길래 저런 말을 하시지...  저만의 땅굴파기는 조언을 들어도 끝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째요. 그래도 해야지. 인턴 시작 때는  해야 할 일이 발상(이름 만들기)뿐이라 생각을 아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8시간 동안  사람이 그 생각만 하며 살기는 힘들잖아요. 그래서 남는 시간 동안 다른 분들이 만들었던 이름을 스터디하기도 하고, 혼자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어요. 오늘은 이렇게 해볼까 하고 허튼짓도 많이 하고요.


 부끄럼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냥 덮어놓고 하기더라고요. 덧붙여 어렵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아니라 몰라 아님 말고의 마인드가 필요한 것 같아요. 발상 회의가 계속되면서 내가 했던 이름을 다른 선배가 가져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후보 이름이 워낙 많아서 겹칠 때가 있어요.) 어차피 사람 생각 다 비슷하다는 걸 보고, 내 이름일 때는 선택이 안 되다가 유려한 설명으로 후보 안이 될 때도 있어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목소리라도 크게 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야 내 스타일도 만들어 나갈 수 있고요.


 지금도 보고서를 컨펌받거나 제가 만든 이름을 소개하는 발상 회의에서 자주 얼굴이 빨개져요.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아요. 오히려 처음이면 들은 게 없으니 더 잘 들리기도 하고요. 그러니 눈치게임 말고 용감하게 먼저 시작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나는 여기에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했던 제가 그 회사에서 4년 동안 꼬박 일하며 이름만 봐도 아름님이 한 거다 하는 스타일을 만들었으니 모두 할 수 있어요.


 쪼꼬미 마인드면 쪼꼬미밖에 될 수 없어요. 부끄럼을 이겨내고 그때만큼은 대범이 마인드로 일단 저질러 보자고요. 거기다가 뻔뻔이 마인드까지 장착되면 어떤 발표든, 회의든 (잘) 하실 수 있습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진짜 안 돼요. 된다고 생각해도 잘 안 되는 게 일이잖아요. 그러니 부끄럼은 이제 그만! 회사 다니면서 저도 성격이 많이 변했는데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더라고요. 먹고살기 위한 사회화! 중요한 포인트예요. 흐흐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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