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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May 28. 2020

우리는 어벤저스가 될 수 있을까?

SMC-FACT를 소개합니다.

3월부터 서울의료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받고, 모든 병실에 음압시설을 하고 의료진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했다. 


서울의료원 입원동은 13층 건물이다. 이 중 8층~13층의 모든 병실에(기술적인 문제로 몇 개는 제외되었다) 음압발생기를 설치하고, 병실 안의 공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지를 확인하였다. 7층은 중앙 상황실과 각 병동의 원격 스테이션, 그리고 감염병 병동인 8~13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터미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사가 이루어졌다. 

코로나-19 환자와 직접 대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곳에서 "방호복" (개인보호장비, Personal Protection Equipment-PPE가 공식 명칭이다)을 입고 이동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곳은 공항의 출국장과 입국장과도 같다.


이 곳 여기 저기에 재미있는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우리는 코로나를 물리치는 코벤저스!", "코로나 물러가라!"고 적혀 있는 부적, 대형 거울 옆에 "당신은 지금 코로나 어벤저스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붙여 놓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코로나-19 전담의료진에 붙은 이름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거울 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런 부적들은 여흥이기도 하지만, 간절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 병원의 데이터와 치료 방침, 치료 성적에 대해서 여러 사람이 모여 논문을 쓰면서, 우리 팀에 근사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면서, 선별진료과 전문의로 일을 하다가, 지금은 감염병전담의학과 전문의이다. 논문의 저자 소속란에 좀 더 근사한 이름을 넣고 싶었다.


의학계에서는 연구 제목의 작명에 신경을 쓴다. PROGRESS 임상 시험은 Perindopril pROtection aGainst REcurrent Stroke Study이다. 뭔가 좀 억지스럽다. BENEFIT study는 BEtaferon in Newly Emerging multiple sclerosis For Initial Treatment 다. 중요한 단어는 multiple sclerosis인데, 막상 대문자는 전치사인 "For"에서 따왔다. 뭔가 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은 연구자들의 마음이 이런 무리수를 두게 한다.


여러 저자들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세 사람의 의견이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SMC-FACT로 결정되었다. Seoul Medical Center - Fight Against COVID-19 Team. 이런 결정에 에너지를 오래 쏟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단지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기를, 우리 논문은 사실(fact)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과학 논문이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냥 우리끼리 그런 의미를 부여했을 뿐)


이 논문은 동료 심사 (Peer Review)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여기 저기에서 게제를 거절당했을 때 의학계에서 흔하게 쓰는 표현이다) 이름이 나빠서였을까? 아니면 우리 수준이 너무 낮았던 것일까? 내용이 별로인가? 


이런 것을 세 번 받았다. 네 번째 저널(논문집)에서는 아직 심사중이다.


의학계에서 검색 엔진(가장 유명한 것은 https://pubmed.gov 이다)에서 찾을 수 있는 논문에 이름을 올라간다는 것은 영원히 기억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0년의 코로나-19 감염에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했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다. 어벤저스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끄럽지만, SMC-FACT의 일원으로 백명의 환자들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다.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거나,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비치는 것보다는, 일반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영어로 된 논문에 이름 한 줄 올라가는게 나에게는 더 큰 영예이다. 사람들은 넷플릭스를 훨씬 많이 보지만, pubmed는 훨씬 오래동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말미에 SMC-FACT를 소개한다. 우리는 36명의 전문의가 모였다.(중간에 교체된 사람이 있어서 전체는 좀 더 많다) 1차로는 감염내과와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투입되었다. 2차, 3차에 거쳐서 소화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순환기내과, 내분비대사내과와 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전문의가 함께 했다. 우리병원에는 입원전담의학과가 따로 있는데, 여기 전문의들도 한 팀이다. 정신건강의학과, 비뇨의학과 전문의도 포함되었다. 마지막 4차 투입이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나였다. 


처음에는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의사들이 영웅이었고, 나머지 의사들은 서포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질병을 함께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고, 30일 넘게 격리되어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속출했다. 코로나-19에 대해서 표준 치료과 함께 모든 의사들은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영역에서 가치있는 일들을 수행했다. 탁월한 영웅들이 모여서 외계인을 물리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벤저스의 영웅들은 모든 측면에서 탁월하지는 않았다. 약점이 있었고, 서로 보완이 필요했다. 그러고 보면 SMC-FACT도 비슷한 것 같다. 코로나-19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 믿고 도우면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사실 솔직한 심정은, 인피니티 스톤을 가진 타노스가 되어 핑거스냅 한 번에 코로나바이러스 전부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싶다. 




오늘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내 이름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의학잡지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우리병원 SMC-FACT의 팀원들이 저자로 포함된 논문이 게제되었다. 저자들 중 유일한 한국인 이름이 우리병원 감염내과 전문의이시다.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015301?query=featured_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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